엄마이기 전에 나로서 서는 시간
3년의 육아휴직.
그리고 복직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 곧 복직이시라면서요?"
"아까워서 어떡해요. 요즘 같은 시간 다시 못 오는데."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힘드시겠어요. 그래도 힘내세요."
축하보다 위로를 먼저 건네는 사람들.
안타깝다는 눈빛 속에서, 나는 오히려 조금 들떴다.
왜일까.
'복직'이라는 단어가 나를 조여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조금씩 다시 펴주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첫 번째 이유. '나'를 위한 선택지가 생겼다.
아이를 낳은 이후, 내 쇼핑리스트는 언제나 아이 것뿐이었다.
아이 옷, 아이 신발, 아이 장난감, 아이 간식.
나는 언제부턴가 '등원룩'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된 옷들만 찾아 입고 있었다.
편안하지만 너무 멋부린 것 같지 않은 옷.
하지만 복직을 앞두고, 거울 앞에 선 나는 조금 달라졌다.
'좀 더 포멀하게 입고 싶은데?'
직장 선배가 복직하면서 옷값만 100만원을 썼다고 했는데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된다.
복직은 나를 위한 선택지를 다시 갖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두 번째 이유. 육아는 나를 닦아주는 연수였다.
바닷가의 조약돌은 거친 파도에 부딪히며 둥글어지고 반짝이는 윤도 난다.
나 또한 지난 3년 동안 두 명의 임금님을 섬기며 말 그대로 '닦이는' 시간을 보냈다.
식탁에서 음식을 내던지며 소리 지르는 아기를 보며 남편과 "블랙컨슈머 등장"이라며 웃었던 날들.
앉기만 하면 행패 부리는 것도 모자라 매일 찾아오는 블랙컨슈머도 이겨냈는데 뭐 직장 생활 고충 쯤이야.
하는 자신감이 든달까.
세 번째 이유.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의 모습
엄마가 다시 일터로 나가는 모습을 아이들이 본다면, 그건 단지 물리적 분리 이상의 의미가 될 것이다.
"엄마는 어떤 일을 해?"
"엄마는 왜 출근해?"
그 질문들 속에 '나만의 일'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내가 담기길 바란다.
내가 선택한 삶의 장면을 아이들이 조금씩 간직해준다면 그건 그 자체로 좋은 아비투스가 될 테니까.
사실, 나도 복직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니다.
다시 아침마다 분주하게 뛰어다녀야 할 테고, 아이의 울음을 뒤로한 채 현관문을 닫는 날이 많아질 테니까.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일은, 내 삶을 외부와 연결시키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라는 걸.
엄마이기 전에 '나'로 살 수 있는 기회를 다시 한번 갖게 된다는 것.
그건, 어쩌면 내가 세상 속으로 다시 피어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