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통해 다시 세상을 배우다
공공장소에서 아이와 함께 있다 보면 난처한 순간을 마주할 때가 많다.
시끄럽게 소리를 내거나, 뭔가를 엎지르거나, 손대지 말아야 할 곳에 손을 대기도 한다.
이런 아이의 행동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옛날만큼 너그럽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라 더 조심하게 된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설 땐 사장님이 괜찮다고 해도, 아이가 어질러 놓은 자리의 바닥까지 닦고 나와야 마음이 편하다.
그러다 어느 날 '노 키즈존'이라는 문구 앞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있는 게 왜 죄가 되어야 하지?
그 질문은 곧 나에게로 향했다.
혹시 내가 아이의 존재를 죄스럽게 여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노-키즈존이라는 용어가 나타난 상황이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그 용어를 만든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불편함을 끼치는 아이들과 거리를 두고 싶을 뿐이다.
더 큰 부정적인 의미는 내가 스스로 부여한 것이다.
정작 아이의 존재 자체를 불편함의 원인으로 느끼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그걸 깨닫자 부모로서 아이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라도 당당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행동'은 바로잡되, 존재 자체는 당당히 안아주자.
아이는 늘 배움의 과정 속에 있다.
이 호기심 많은 학습자에게 공공장소는 새로운 환경이고, 이 환경의 규칙을 아는 부모로서는 당연히 할 일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일이 많아진 만큼 부담이 늘지만 그게 아이 잘못은 아니다.
훈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 훈육이 아이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흐르면 안된다.
'이 상황이 힘들다'는 말과 '네가 문제다'는 말은 차원이 다르다.
아이와 공공장소에 난처한 상황이 없었더라면 이것을 배울 수 있었을까?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는 데 있어서 아이는 크고 밝은 등대같다.
아이를 키우며 점점깨닫는다.
상황과 존재를 분리하는 법.
존재자체를 긍정하는 태도는 아이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필요한 일이다.
실수해도 괜찮아. 다음에 더 잘 할테니까.
어설퍼도 괜찮아.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까.
나도 이 삶을 처음 살아보는데, 이정도면 괜찮지.
아이를 통해 나는 존재를 긍정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누구의 시선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가 내 삶의 다리가 되어주는 연습.
아이와 함께 있다는 이유로 세상의 불편한 시선을 의식하느라 움츠러들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아이 덕분에 나는 매일 조금씩, 더 유연하게, 더 단단하게 세상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