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자는 시간, 나는 살아났다
새벽 러닝을 시작한 지 3주가 되었다.
아이도 남편도 없이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을 찾아 새벽 시간으로 내 시간을 설정한 지는 2년이 지났다.
이 시간을 갖기까지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새벽에 깨서 우는 아기를 다시 재우러 같이 들어갔다가 아이랑 같이 아침까지 자기도 했고, 엄마의 부재를 눈치챈 아기들을 위해 아빠의 희생도 필요했다.
그런 외부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잠을 더 자고 싶은 날도 있었다.
그런 지난한 날들이 쌓이다 보니 이제 새벽 2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큰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수행하듯이 그 시간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시간을 나를 위해서만 쓴다는 것이 나를 살아나게 했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생각하고, 탐구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충만하게 만들었다.
나만을 위한 시간을 '발견'한 후에 발전해 가는 과정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만 그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침 시간을 활용해 홈 피트니스를 하는 엄마도 있었고, 러닝을 하는 엄마도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아침에 동네 한 바퀴 돌면 좋겠다는 생각에 운동화를 신고 밖을 나섰다.
첫날은 문 열리는 소리에 아이들 잠이 깰까 봐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모른다.
이윽고 밖으로 나갔을 때 고요한 집을 돌아보며 안도감을 느꼈다.
아침 러닝을 하러 가보니 그 시간에 뛰는 사람이 꽤 많았다.
주로 남자분이 많았는데, 한 분은 얼굴에 복면을 쓰고 있어서 여자인지 남자인지 얼핏 가늠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율곡이 엄마!" 하며 나를 부르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같은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이웃이었다.
하원 후에 늘 놀이터에서 만나 육아 이야기를 종종 나누곤 했었는데, 오늘의 만남은 두 사람 모두에게 너무나 의외의 장소와 활동이었다.
그렇게 급 '줌마 러닝 클럽'이 만들어졌다.
매일 5시 40분이면 가로등 아래에서 모여 5km를 뛴다.
그리고 좋은 하루 보내라는 인사와 함께 서로의 하루를 향해 헤어진다.
아이를 낳고, 세상의 중심이 나에게서 멀어졌다고 느낀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내가 있었다.
그 조용한 새벽 시간, 누구의 엄마도, 아내도 아닌 '나'로 존재했다.
매일 조금씩 나를 꺼내어 안아주고, 닦고, 다듬었다.
그 시간은 단지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 내가 나로 존재하는 선언이었다.
문득 나를 잃어버린 것 같다면, 다른 무엇보다 시간을 내게 선물하자.
그 어떤 것보다도 나를 살아 숨 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나로 피어났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