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돈은 누가 다 썼을까

매주 수요일 연재 | 브런치북: 가족여행의 기술

by 늘보나무

2025 「타짜」 in 라스베가스



<등장인물>


1. 또니(고니役) — 남동생
- 전적: 다수의 카지노 경험, ‘플러스 정산’ 기록 보유
- 무기: 블랙잭 경우의 수 암기, 현장감각으로 다져진 빠른 판단력
- 약점: 입버릇 “한 판만 더”

2. 빵마담(정마담役) — 여동생
- 전적: 마카오 슬롯머신으로 짤짤이 신화 창조. 어머니의 철벽 만류로 ‘대박 직전 귀가’라는 평생의 한(恨)을 간직
- 무기: 빠른 게임 이해력과 훈수 스킬
- 약점: 남의 판만 잘 읽을 수 있음

3. 잠귀(아귀役) — 나(서술자)
- 전적: 카지노 경험 無. 강원랜드에서도 사람 구경만 하다 온 인간
- 무기: 오늘의 운세 “재성(금전운)이 열렸다!”
- 약점: 명리학 적용이 한국 시각 기준인지, 라스베가스 시각 기준인지 모름


<배경>
- 장소: 라스베가스 스트립의 여느 카지노
- 시간: 낮과 밤이 없는 24시간





가족회의


라스베가스에 입성하기 전날 저녁. 테이블 위로 기름진 고기와 구수한 된장찌개가 올랐지만, 다들 카지노 이야기에 빠져 있느라 손도 대지 않고 있다. 열띤 가족회의의 결론은 매우 단순했다.
[누구든지 따면 숨기지 말 것.

한탕 성공 시 여행 경비에 보태 럭셔리 여행 모드로 즉시 전환]

엄숙하게 선포된 규칙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누군가 물었다.

“근데 우리 중에 가장 금전운 좋은 사람은 누구야?”

잠시 정적. 엄마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명리학을 공부한 흔적이 묻어나는 단단한 목소리였다.

“제일 재성(금전운)이 있는 사람은… 잠귀야. 그 기운을 빌려야지.”

순간, 가족들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 꽂혔다. 은근한 기대가 섞인 눈빛 세례 나는 부담스러우면서도 어깨를 으쓱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걸 진짜 믿는다고?’



맛보기 전


라스베가스 첫날, 나는 장시간 운전의 피로에 지쳐 체크인하자마자 침대에 바로 눕고 말았다.
“오늘은 그냥 푹 자자.”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곧 깊은 잠에 빠졌다.
그 사이 또니와 빵마담은 조용히 방을 나섰다. 둘은 룰렛과 크랩스(주사위)로 몸풀기를 시작했지만, 초반부터 판돈은 모래처럼 흘러내렸다.
잔액이 줄어드는 속도에 조급해진 두 사람은 마지막 룰렛에 모든 간절함을 걸었다.
“여기 이 구간이야.”
“제발 이번엔…”
바퀴가 돌고, 작은 공은 아슬아슬하게 튕기며 궤적을 그렸다.
그리고 멈췄다.

적중.
순간, 숨까지 멎었던 둘은 동시에 환호성을 질렀다.

본전 회복.
“그만 됐어. 오늘은 몸 푼 거니까.”
본전만 찾은 것이었지만, 마치 대승을 거둔 듯한 기분에 들떠 둘은 방으로 돌아왔다.



화려한 유혹


다음 날, 근처 윈(Whyn) 호텔. 화려한 샹들리에가 빛나는 천장 아래, 수십 개의 슬롯머신이 불빛을 토하고 담배 연기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가득다.
“여긴 공기부터 돈 냄새가 난다.”
또니가 탄성을 내뱉었다.
“꾼들로 가득 찼네. 우리도 제대로 해보자.” 빵마담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이때 드디어, 재성의 운명을 짊어진 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몇 번의 소심한 시도로 룰렛의 흐름을 익힌 나는, 손가락으로 특정 구간을 가리켰다.
“짝수… 빨간색. 그리고 이 구간이야.”
공은 튀고 튀며 구르기를 이어다 결국 내가 고른 구간 내 한 숫자에 멈췄다.
적중.

판돈은 단숨에 +50% 뛰어올랐다.
“역시 재성운!!!”
“흐흐흐… 세 개 다 맞았네.”
가족들의 눈빛엔 놀라움과 존경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행운이 이어질 거라 믿으며 신난 발걸음으로 본진 숙소로 돌아왔다.



라스트 콜(1)


조금 늦다는 내 문자에 '의 운이 11시 반부터 1시 반까지야. 꼭 합류할 것.'이란 답변이 아왔다.

선발대 또니와 빵마담은 먼저 블랙잭 테이블에 앉았다.

“이제 본업으로 3배 불려보겠으~”
또니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렇다. 그의 업은 블랙잭. 많은 경험과 전적으로 증명되는 주종목이었다.
초반 흐름은 놀라울 만큼 매끄러웠다. 또니의 손끝은 망설임이 없었고, 금세 목표액의 2/3까지 올라섰다.
그 순간 또니가 목소리를 낮췄다.
“이대로는 너무 오래 걸려. 베팅을 키워야 해.”
빵마담의 얼굴에 불안이 스쳤지만, 또니는 이미 결심을 굳힌 눈빛이었다.
과감한 5배 베팅.
공기는 긴장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라스트 콜(2)


내가 둘을 찾아 테이블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상태는 상당히 초췌했다. '나 왔어.'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왜 이 모양이야?”
“다 잃고… 이거 남았어.”
빵마담 손에 남은 건 판돈의 20%뿐.
사연을 묻자 빵마담은 체념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창 잘 벌고 있었는데, 또니가 베팅을 5배로 올려서…”
남은 희망은 룰렛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도착한 지 불과 10분 만에, 손 쓸 새도 없이 모든 돈이 사라졌다.
객실로 돌아가는 길, 또니의 뒷모습은 유난히 작아 보였다.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작게 걸었으면 끝이 안 났을 거야. 잃든지, 목표를 이루든지… 빨리 결론을 내고 싶었어.”
빵마담은 담담히 답했다.
“크게 걸면 빠르게 잃을 수 있다는 걸, 오늘 본 거지.”
나는 생각에 잠겨 말했다.
“그런데 내 운세 시간 말이야… 한국 시간 기준이야, 라스베가스 시간 기준이야?”
순간, 세 쌍의 눈들이 마주치고 두가 수긍하듯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이 라스베스의 밤이 남긴 마지막 교훈이었다.



돈은 누가 다 썼냐고요?
결국 돈은 라스베가스 최고의 희망고문 쇼였어요.
우린 비싼 입장료 내고 평생 이야깃거리를 산 셈이죠.



다음주 수요일 7시

"5화 그 많던 음식은 누가 다 먹었을까"가 이어집니다.
계속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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