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음식은 누가 누가 다 먹었을까

매주 수요일 연재 | 브런치북: 가족여행의 기술

by 늘보나무

프롤로그


열띤 토론의 주제,
가장 치열하게 고민되는 일정,
누군가에겐 여행의 목적이자 전부—
그것은 바로 “식사”였다.

대가족 여행의 본질은 결국 메뉴 회의의 연장전이다. 날씨보다 파급력이 큰 건 “오늘 뭐 먹을래?”라는 한마디.
이 질문에 성격이 드러났고, 세대차가 벌어졌다. 그리고 묘하게도, 음식을 고르는 순간만큼은 누구나 자기 고집을 조금씩 드러냈다.



아버지 : 양갈비가 최고다잉


미국 서부의 광활한 대지는 한없이 넓었지만, 아버지의 속은 늘 비어 있었다.
햄버거도, 타코도, 피자도 나쁘진 않았지만 평소의 ‘든든한 한 끼’를 대신하긴 역부족이었다.
“내가 한국에선 매일 화장실 가는데, 여기선 영…”
아버지의 표정이 날마다 어두워졌다. 낯선 음식이 남긴 공허함은 몸보다 마음을 더 지치게 했다.
그때 남동생이 마트에서 양갈비를 사 와 소금, 후추, 올리브유로 정성스레 재웠다. 숙소의 프라이팬을 달궈 굽고, 양파 무침까지 곁들였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숙소 안에 번지자 가족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아버지는 첫 점을 드시더니 표정이 환해졌다.
“아들이 구워준 고기라 더 맛있다.”
란 한마디가 식탁 위를 훈훈하게 덮었다.
아버지에게 음식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었다. 누가 구워주느냐, 어떤 마음이 담겼느냐에 따라 비어 있던 속뿐 아니라 마음까지 가득 메워주는 식량이었다.

여러 마트 비교 결과 트레이더조 양갈비가 베스트



여동생 : 무한리필이 주는 도감


여동생은 ‘무한’에서 힘을 얻 타입이었다. 호텔 뷔페의 메뉴 지도를 외우듯 훑고 거침없이 담아 오고 맛본다. '런치 말미에 들어가 디너 메뉴 걸치기'라는 비장의 각오도 서슴지 않는다.
“언니, 이거는 전략이야. 같은 돈 내고 더 많이 맛볼 수 있는 거지.”
현실은 종종 그녀의 전략을 배신했다. 디너용 메뉴 실종, 길게 늘어선 대기 줄, 떨어지는 음식의 맛.

그럼에도 여동생은 샤브샤브 무한리필의 고기 앞에서 다시 의지를 다졌다.
“고기 더 리필되죠?”
점원의 대답이 떨어지자 육수 냄비가 다시 팔팔 끓어올랐다. 청경채와 버섯이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가고, 그녀는 집게를 단단히 쥔 채 말했다.
“든든히 먹어두면, 버틸 수 있거든.”
생각해 보면, 여동생에게 무한리필은 단순히 ‘양’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음껏 먹어도 괜찮다는 허락 같은 것. 그 안도감이 피로를 분해했고, 다시 힘을 내게 했다.
그리고 그 고집스러운 집착이 우리 가족의 허기까지 주 구해주곤 했다.

회전 샤브샤브



아이 : 라면 최고


라스베가스의 화려한 호텔 뷔페도, LA 베니스비치 먹음직스러운 파스타도, 아이의 라면 사랑 앞에서는 힘을 잃었다.
장거리 이동을 끝내고 도착한 어느 밤, 우리 가족은 호텔 방 카펫 위에 원을 그리듯 앉아 컵라면 뚜껑을 동시에 젖혔다.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자, 방 안에 작은 환호가 퍼졌다.
“와… 이 냄새.”
아이의 젓가락은 누구보다 빨랐다. 덜 익은 면발을 후루룩 삼키며, 김치 팩을 자기 앞으로 슬쩍 끌어왔다. 그러고는 마냥 순수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행에서 제일 좋은 건 이거야.”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컵라면 한 젓가락이 그날의 고단함을 단번에 지워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음식은 행복 버튼이었다.
낯설고 새로운 것 투성이인 여행에서, 진짜 하이라이트는 늘 익숙하고 안전한 맛—뜨끈한 국물과 꼬들한 면발 한 젓가락이었다.

치즈케이크팩토리의 케이준 잠발라야 파스타



남동생 : 무한리필 빼고


남동생은 음식 앞에선 진지했다.
“뷔페는 손해 보는 장사야. 배에는 한계가 있고, 가격엔 다 이유가 있어.”
그의 철칙이었다. 다들 무한 리필에 눈이 뒤집어질 때도, 그는 묵묵히 한 접시의 완성도를 따졌다.
양갈비를 손수 구워 아버지의 얼굴을 환하게 만든 것도, 구글맵과 유튜브를 파고들며 가족들에게 새로운 맛집을 제안한 것도 남동생이었다.

그에게 음식은 ‘양’보다 ‘기억에 남는 맛’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일까. 메뉴 회의가 끝없이 공전할 때면, 그의 한마디가 방향을 잡아주곤 했다.
“이제 더 이상 무한리필은 그만.”

보일링 크랩-보기보다 맛이 꽤 좋다



에필로그


그 많던 음식을 누가 다 먹었냐고요?
결국 우리는 같은 그릇을 사이에 두고 함께 웃고, 함께 나눠 먹었어요.
여행이란 어쩌면 새로운 맛을 찾는 일이 아니라, 익숙한 사람들과 다시 ‘같이’ 먹는 법을 찾는 일일지도요.



다음 주 수요일 7시
"6화 그 많던 시간은 누가 다 썼을까"가 이어집니다.
계속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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