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책에 수면제 탔니?

브런치북 <책상 앞의 선생님> | 화요일 연재

by 늘보나무

D-71


“오늘은 진짜 열심히 공부해야지!”
매일 같은 다짐으로 하루를 시작했지만, 책을 펼치자마자 다짐은 금세 희미해졌다. 이상하게 책만 읽으면 머리가 멍해지고, 글자는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곧 졸음이 몰려온다. 강의는 그나마 버틸 만한데, 활자만 보면 눈꺼풀이 반쯤 내려온다. 정말 누군가 책마다 수면제를 뿌려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졸릴까? 스스로 원인을 적어봤다.

1. 식후 혈당 스파이크
→ 밥을 줄여야 하나?

2. 그냥 피곤함
→ 부모님 말씀대로 공부는 때가 있나 보다.

3. 내용이 이해 안 되거나 어려울 때
→ 문해력이 부족하다.

아, 역시 3번.
추리소설은 술술 읽히는데, 전공책만 펼치면 왜 이리 졸음이 몰려오는 걸까.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어야 겨우 의미가 잡히고, 그 사이 뇌는 이미 지쳐버린다. 책에 수면제가 든 게 아니라, 뇌가 ‘이해 불가’라는 방어 기제를 작동시킨 거다. 오늘은 결국 국어 교육론 지문을 붙잡다가, 잠깐 화성까지 다녀왔다. 내용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의도와 핵심을 정리하려니 눈동자가 풀리고 마음은 딴 데로 간다. 읽어도 소화가 안 되는 글은 질기고 딱딱한 음식 같다. 잘게 씹어 삼켜야 하는데, 턱만 아프고 결국 뱉어버리고 싶어진다.

생각해 보니 아이들도 그랬다. 공부 잘하는 학생조차도 긴 글을 읽는 순간 힘겨워했다.
국어는 물론이고 영어 지문, 사회·과학 교과서도 마찬가지였다. 문제 풀이를 못 해서가 아니라, 글 자체를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니 눈이 감기고 몸이 먼저 항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책 보다 영상을 찾았다. 선생님이 설명해 주는 강의, 자막이 친절히 달린 학습 영상, 짧고 직관적인 요약 콘텐츠. 확실히 즉각적인 이해에는 효과가 있었다. 나 역시 수험생이 된 지금, 영상을 보며 개념을 이해하는 게 더 빠르다고 느낀다.

그런데 직접 공부해 보니 알겠다. 영상은 인스턴트 라면 같다. 뜨겁고 자극적인 맛으로 금세 허기를 달래주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반면 책을 붙잡고 씨름하는 건 오래 끓인 국밥 같다. 과정은 느리고 힘들지만,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건 결국 그쪽이다. 근본적인 독해력과 학습력은 인스턴트로 대체할 수 없다. 결국 텍스트를 붙잡고, 졸음과 싸우며 끝내 이해하는 힘이 쌓여야 한다. 아이들이 그리고 내가 졸던 순간, 사실은 공부와 싸운 게 아니라 문해력의 벽과 싸우다 무너진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 나만이 아닐 거다. 책 펴고 세 장 읽었는데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경험, 다들 있지 않나. 그 순간 졸음은 게으름의 증거가 아니라, 이해하지 못한 채 버티던 뇌가 SOS를 보내는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책에는 수면제가 들어 있는 게 아니다. 필요한 건… '엉덩이 힘'
옛말에 공부는 엉덩이로 한다 했듯, 결국 끝까지 붙잡고 버티는 힘이 전부다.
요즘 들어 느낀다. 단백질 보충제보다 더 절실한 건, 엉덩이 근육에 필요한 ‘인내심 보충제’라는 걸.



다음 주 화요일 7시
"지력 정기구독"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