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완벽주의자

by 늘보나무

“전 게으른 완벽주의자인가 봐요.”
학생과 성적 상담을 하던 중, 아이의 입에서 낯선 단어가 흘러나왔다.
게으른 완벽주의자.
당시 난 뜬금없다고 여 뿐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곧 시험인데 무슨 완벽주의야?’
하지만 나도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서야 그 말을 실감했다.

공부법을 고르고, 책을 펼치며, 계획을 세우는 매 순간마다 마음 한구석이 웅웅거렸다.
“이건 나한테 맞을까? 이 시간, 헛되게 쓰는 건 아닐까?”
완벽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생각은 많아지고 몸은 더 굳었다.
‘제대로 해내고 싶은데, 실패하면 어쩌지.’
그 불안이 저 깊은 곳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은 게으름이라는 습관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원리는 공부뿐 아니라, 시간·자연·관계·글쓰기에도 똑같이 숨어 있었다.



1. 시간의 완벽을 믿는 사람

완벽을 꿈꾸던 나는 ‘오늘’을 연습 삼아 썼다.
조금 더 준비된 ‘내일’을 기다리며 오늘을 흘려보냈다. 계획표는 시간이 갈수록 정교해졌지만, 그럴수록 실행하지 못했다.
리허설만 반복하다 막상 무대에 오르지 못한 채 대본만 다듬는 배우처럼.
결국 나는 현재를 믿지 못하는 습관에 갇혀, 완벽을 핑계 삼고 있었다.


2. 자연의 불완전함을 닮지 못한 인간

자연은 언제나 비뚤고 흔들리며 자란다.
나무는 구부러지고, 강물은 구불구불 흐르며, 구름은 매 순간 다른 모양으로 흩어진다.
완벽이란 정지 상태이고, 살아 있는 것은 정지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만은 이 진리에서 어나고자 한다. ‘계획’을 세워 ‘틀’을 만들고, 그 틀에서 벗어나는 걸 실패라 부른다. 라인 밖으로 나갈까 두려워 발을 떼지 못하는 초보 운전자처럼, 우리는 불완전 속에서 자라나는 자연의 법칙을 잊고 산다.


3. 관계 속의 완벽주의

요즘은 완벽한 커플, 완벽한 가족, 완벽한 하루의 이미지가 너무도 쉽게 눈에 띈다.
그러다 보니 관계를 맺기 전부터 경제력, 시간, 태도를 완벽히 갖춰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관계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완벽한 시기를 기다리는 동안, 서로의 마음은 점점 식고, 표현할 용기도 줄어든다. 마치 유니콘을 찾는 아이처럼,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관계를 그려놓고 그 몽타주를 좇는다. 관계에서도 완벽을 믿는 사람은 멈춰버린다.


4. 글쓰기의 완벽주의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완벽한 첫 문장을 고심하다가 결국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날들이 있었다. 쓰는 와중에도 글이 로인가 싶어 고민하고, 초안을 완성하고도 다시 새로 쓸까 고민하다 하루가 다 갔다. 하지만 글은 생각이 아니라 흐름으로 만들어지는 생물이었다. 써야 비로소 보이고, 틀려야 다음 문장이 열린다. 부끄러운 문장이라도 내보인 날들, 그 안에서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글도 삶도, 완벽하게 쓰려다 멈추는 것보다는 서툴게 이어가는 것이 낫다.


완벽한 계획, 완벽한 컨디션, 완벽한 공부법은 없었다. 결국 어설픈 첫 발만이 불안과 정체, 고독을 이기는 방법이었다.
오늘은 어설프게 책 한 장, 내일은 반 장을 읽는다. 그 불완전한 반복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아간다.
학생이 했던 말이 다시 떠오른다.
“완벽하게 공부하고 싶은데, 준비가 안 됐어요.”
그 말에 이제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괜찮아. 우선 해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돼.”
불완전을 버틸 수 있는 용기,
그게 완벽주의자가 가진 진짜 실력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완벽하지 않은 하루를 제법 씩씩하게 살아내고 있다.



다음 주 화요일 7시

"는 몇 점짜리일까?"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