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책상 앞의 선생님> | 화요일 연재
“이 선생님, OO이는 성적이 계속 안 좋던데…”
“네. 그런데 OO는 정말 성실하고 다정해요.
전 좀 더 두고 보고 싶어요.”
그렇게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의 한 줄 성적표보다 그 아이가 가진 가능성을 더 믿을 수 있었던 시절.
특목고에 근무하며 알았다. 시험은 학생에게만 질문하는 게 아니라
선생인 나에게도 끊임없이 속삭였다.
“자, 이제 변별해야지?”
그래서 출제할 때 스스로 세운 제1원칙은 단 하나였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보상받을 수 있는 문제를 만들자.》
시험이라는 제도 속에서 내가 학생들에게 건넬 수 있는 최소한의 위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시험을 준비해 보니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시험은 과정보다 결과, 사람보다 숫자를 믿는 방식이라는 것.
인사 담당자에게 나를 설명해야 할 때조차
종이 한 장의 점수가 여전히 우선이었다.
시험은 참 단순한 장치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방식으로,
정해진 답을 찾게 만든다.
선을 넘으면 오답이고, 묻지 않은 것은 말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이 나를 전부 말해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숫자 하나에 너무 쉽게 설명당한다.
그래도 나는 안다. 정답 맞히는 능력과 사람이 가진 잠재력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예전에 한 학생이 있었다. 성적은 늘 중간 아래였고, 자신감은 그보다 더 낮았다.
나는 상담 시간마다 말했다.
“넌 아직 네 결과를 다 보여주지 않았어.
지금처럼만 포기하지 않고 가면 언젠가 원하는 곳에 도달할 거야. 스스로를 믿는 걸 잊지 마.”
다음 해, 그 아이는 학급 실장이 되었다. 성적표로는 절대 보이지 않던 리더십과 책임감이 그 안에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시험은 사람을 겉문장만 읽고, 맥락 속에 숨은 성장의 이야기는 놓친다. 사람은 책 한 권인데, 시험은 그중 한 줄만 보고 판단하려 한다.
나도 실패로 훨씬 많이 자라왔다.
길을 잃고 헤매던 시간,
아무도 모르게 포기했던 날들,
정답을 찾다 울어버린 밤들.
나의 부족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던 순간,
부끄러운 숫자를 확인하며
숨고 싶었던 날들.
오히려 정답지에는 없는 과정 속에서
나는 계속 변하고 있었다.
한 번의 시험이 한 사람의 가능성을 규정할 수 있을까? 성적표에 없는 것들로 나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살아왔는데.
시험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나의 전부가 될 순 없다. 책 한 줄이 책이 아니듯,
점수 하나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안다. 나는 시험보다 훨씬 더 복잡한 존재라는 걸.
채점할 수 없는 면적이 훨씬 넓은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누가 또 묻는다면
“너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나는 이렇게 답할 거다.
“나에 대해 아직 더 배워야 할 게 많아요.”
이 말은 학생들에게 하던 위로였지만, 이제는 나에게도 꼭 필요한 말이다.
아직 펼쳐지지 않은 나의 가능성을
스스로 믿어주는 말.
다음 주 화요일 7시
"불안아, 너 왜 또 왔어"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