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책상 앞의 선생님> | 화요일 연재
20대 수험생이던 시절, 여느 때처럼 하루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밤이었다. 정류장 앞, 버스가 올 방향만 멍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내가 탈 버스는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 아득함에 사로잡혔다.
“이 길이 정말 끝날까?”
“또 떨어지면, 내 인생은 망하는 거 아닐까?”
그때의 나는 단순했다. 붙으면 인생이 열리고, 떨어지면 끝이라고 믿었다.
미래는 너무 멀었고, 지금의 불안만 숨이 막히게 가까웠다.
인생이 열리고, 교사가 된 후에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모양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조용하면 ‘수업이 지루한 걸까’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반대로 시끄러우면 ‘내가 통제력이 없나’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떤 날은 학생의 반항적인 표정 하나에 뭐가 잘못된 걸까 밤새 되짚어 봤고,
또 어떤 날은 학부모의 날 선 전화에 내 인격까지 흔들리는 기분을 느꼈다. 시험 문제 출제 기간에는 단 한 글자가 수백 명의 노력을 망칠까 싶어서 몇 번이고 검토하느라 손끝이 차가워지곤 했다.
시험을 앞두고 전교권인 학급 반장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을 때 나는 그녀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선생님, 아이가 요즘 너무 예민해져서요. 좀만 살펴주세요.”
마치 벽 너머에서 들려온 옛 나의 목소리 같았다. 학교에서는 천진하고 밝은 아이였지만, 집에서는 숨겨둔 불안과 싸우고 있었나 보다.
"반장, 오늘 남아서 잠깐 선생님 좀 도와줄래?"
텅 빈 교실에서 학급 게시물을 정리하다가 그냥 젠체하지 않고, 이론도 없이 툭 솔직히 말을 건넸다.
“선생님이 시험 볼 때 여러 번 떨어져 봤어. 그래서 계속 불안했지. 근데 한 번은 불안하지 않던 순간을 알게 됐는데 말이야. 바로 공부하고 있을 때였어. 공부하는 동안만큼은 불안이 나를 붙잡지 못했거든.”
그 말이 아이 마음에 닿았는지는 모른다.
다만 더 이상 어머니에게서 별다른 연락은 없었고 아이는 그해 말 결국 원하던 특목고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다시, 수험생이 된 지금.
불안은 또 온다. 이번에는 조금 더 어른스러운 얼굴로.
지식도 경험도 쌓였는데, 눈은 예전만큼 글자를 따라가지 못하고 손가락 근육도 무뎌졌다. 낯선 문제를 만나면, 이해가 한 박자 늦는다. 그럴 때면 가슴 안쪽이 서늘해진다.
'이것은 무모한 도전일까?'
'나는 이제 새로운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운 사람이 된 걸까?'
그러면 또, 마음 한쪽에서 나를 오래 지켜본 내가 조용히 회상을 시작한다.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 닫힌 문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문이 열렸던 것.
사실 이제는 불안만 들여다볼 수도 없다. 내가 붙들어야 하는 건 내 미래만이 아니니까.
부모님의 건강, 아이의 하루,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기쁨과 근심… 20대의 나와 다르게 내가 지켜야 할 삶의 면적이 넓어졌다. 걱정은 여전히 있지만, 이제는 책임과 현실이 함께 앉아 있다.
예전엔 ‘망하면 어떡하지’가 두려웠다면
지금은 ‘멈춰버리면 어떡하지’가 두렵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자리만 옮기고, 얼굴만 바뀐다. 학생일 땐 성적, 사회에서는 평가, 지금은 변화의 속도.
뉴스 속 금리와 전쟁, AI와 산업, 타인의 성공과 실패가 나비의 날갯짓처럼 파동을 만들고 내 일상의 공기를 흔든다.
예측할 수 없는 시대, FOMO는 체온처럼 스며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불안을 없애는 게 목표가 아니라는 걸.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그리고 반드시 없어져야 할 감정도 아니라는 걸. 불안이 찾아오면 그냥 흘끗 바라본다.
‘아, 나 아직 살아 있네.’
그렇게 넘기려고 한다.
오늘도 불안은 먼저 와 있었다. 괜찮다.
그걸 문 밖에 두려고 애쓰기보다 옆자리에 살짝 앉혀두고, 그 옆에서 책을 펼치면 된다.
“불안아, 또 왔어?”
좋아, 거기 앉아 있어. 난 오늘도 공부할 거니까.
다음 주 화요일 7시
"내가 제일 늙었어"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