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책상 앞의 선생님> | 화요일 연재
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다.
성취해야 할 목표는 분명했지만, 책을 펼칠 힘조차 나지 않았다. 펼쳐도 글자들이 눈앞에서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차라리 건강이나 챙기자. 노후 준비해야지.”
이유는 그럴듯했지만, 사실은 도피였다. 운동은 공부를 미루는 가장 합리적인 핑계였다.
‘적어도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잖아.’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며 운동복을 입고 매트를 깔았다.
이상했다.
운동은 결과가 빨랐다.
며칠만 꾸준히 해도 몸이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허리가 덜 아프고, 계단 오르기가 쉬워졌다. 스트레칭할 때마다 몸이 쭉 펴졌다.
공부는 나를 의심하게 했지만, 운동은 나를 믿게 만들었다.
노력의 결과가 눈에 보인다는 건 이렇게 단순하고도 확실한 일이었다.
그게 반가워서, 나는 조금씩 운동에 빠져들었다.
물론 운동은 귀찮았다. 준비물도 많고, 땀을 흘리면 샤워도 해야 하고, 운동복 빨래를 돌리는 것도 귀찮았다. 엄마이자 수험생으로서 운동할 시간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았다.
출근 전이나 퇴근 후 운동하던 동료들을 보면,
‘저 사람들은 다른 종족이야’
라고 생각했었다.
아마 다시 일을 하게 되더라도 평일에 꾸준히 운동을 이어갈 자신은 없다. 그래서 여러 번 그만둘까도 고민했다. 그런데 잠시 쉬어보니 이상하게도 공부에도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몸이 굳으면 생각도 굳어갔다.
그때 알았다.
운동은 단순히 체력을 기르는 게 아니라, 집중력과 인내를 훈련하는 과정이었다.
요가 수업에서 강사가 말했다.
“한 점을 바라보세요. 몸이 흔들려도 계속 그 점을 보세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글이 도무지 읽히지 않을 때, 결국 필요한 건 포기하지 않고 ‘한 점’을 바라보는 힘이었다.
예전엔 막히면 바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는데
이젠 잠깐 멈췄다가 다시 펜을 잡는다. 운동 중 다리가 후들거리던 순간을 버텼던 기억이
책상 위에서도 작동하는 듯하다.
공부는 여전히 어렵고, 성취감은 더디지만
운동에서 배운 리듬이 나를 붙잡는다.
공부의 근육은 결국 몸의 근육처럼 만들어진다.
조금씩, 반복적으로, 꾸준히.
학교로 돌아가 학생들을 마주하게 된다면
잠시라도 몸을 움직이는 시간을 제안할 것이다. 앉아 있다고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젠 너무 잘 아니까.
“얘들아, 운동이 성적을 올리는 비법은 아니지만 공부를 버티는 체력은 만들어줄지도 몰라.
아이돌의 예쁜 몸을 부러워하지 말고,
그 몸을 유지하는 의지 근육을 부러워하자.”
다음 주 화요일 7시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