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를 줄 알았다

브런치북 <맨정신엔 말 못할 개똥철학>

by 늘보나무

어느 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넘기다
조명 아래 반짝이는 흰 선 하나를 발견한다.
다급히 머리카락을 뒤적이다가
숨어 있던 몇 가닥을 더 찾아내고는
손이 잠시 멈춘다.
언젠가 생길 거라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 보이니 마음이 묘하게 흔들린다.
젊음은 영원하다고 믿어서라기보다
아직은 나와 조금 거리가 있다고 느낄 때
유지되는 감각인지도 모르겠다.
작은 변화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신호 같아
거울 속 얼굴이 어제보다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나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대체로 자신감이 있는 편이었다.
글쓰기도 그랬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어딘가에는 닿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세상의 반응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수많은 글 사이에서 내 글은 금세 흘러가고,
별다른 사건 없이 존재가 희미해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알게 되는 건
내가 생각보다 많이 기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시도를 멈추지는 않았다.
반응이 크지 않아도 다음 글을 쓰고,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생각했다.
이유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단순히 성공하고 싶어서만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스스로 내렸던 판단이
완전히 틀리지 않았다는 걸
어딘가에서 확인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스스로 괜찮다고 믿고 시작하지만
그 믿음이 조금 더 단단해지는 순간은
작은 반응 하나를 만났을 때인 것 같다.

짧은 댓글, 좋아요 같은
대단한 인정이라고 부르기에는 작지만
그 작은 반응 하나가
혼자만의 생각이라고 믿었던 문장을
조금은 바깥으로 꺼내 놓는 느낌을 준다.


도전이라는 건
세상을 향한 선언이라기보다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모든 시도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시간도 있고,
열심히 했지만 흔적이 남지 않는 날도 있다.
그런데도 반복이 이어지는 건

믿음이란

확신이 없는 시간들을 견디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은 끝까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한다.
그 마음은 거창한 결심보다
작고 반복적인 시도로 나타난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세상은 늘 바쁘게 움직인다.
대부분의 순간, 사람은 평범한 한 사람으로 남는다.


그래도 우리는
가끔 다시 자신을 믿고 싶어진다.
확신이 없는 날에도
다음 문장을 쓰고,
또 다음 하루를 시작하면서.



나무늘보의 개똥철학 같은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보나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