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의 유효기간

브런치북 <맨정신엔 말 못할 개똥철학>

by 늘보나무

해냈다.
준비하던 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결과 발표를 앞둔 일주일은 유난히 길었다.
기다린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온 마음이 한 곳에 매달린 채 흔들리는 시간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가만히 앉아 결과를 기다리기엔 불안 너무 커져서 가족을 설득해 인근 산으로 향했다. 정기가 좋아 기도터가 많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아이가 물었다.
“아직도 결과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야?”
지극히 이성적인 질문이었다.
하지만 간절함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논리보다 붙잡을 수 있는 무언가를 더 찾게 된다.


한겨울 산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아 길은 질척거렸고,

발은 자꾸 미끄러졌다.
그래도 중간중간 돌을 쌓으며 소원만 생각했다.
가장 중요하다는 기도터로 향하는 계단은
얼어붙어 통행이 막혀 있었다.
결국 기도터에는 닿지 못한 채, 가능한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두 손을 모았다.
“커트라인이라도 괜찮습니다.
그저 합격만 하게 해 주세요.”
그 순간의 마음은 단순했다.
합격이면 충분했다.


일주일 뒤, 최종 합격자 발표일.
이 나이에도 결과 조회창을 누르는 손이 덜덜 떨렸다.
'최종 합격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토록 바라던 결과를 확인하고도
나는 한동안 화면을 닫지 못했다.
점수와 등수를 계산해 발령지를 예측해 보기 위해서였다.
합격의 안도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곧바로 새로운 기준이 생겨났다.
‘점수가 조금 더 높았더라면.’
‘발령지가 조금이라도 집에서 가까운 곳이면 좋겠는데.’
산에서의 기도는 분명
“합격이면 충분하다”였다.
그러나 합격이라는 문턱을 넘는 순간
마음은 이미 다음 계단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며칠 뒤, 대략적인 발령 지역이 발표되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먼 곳이었다.
확정 발령지가 나오기까지 몇 시간 동안
머릿속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득 찼다.
배도 고프지 않았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합격이라는 기쁨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최종 발령지가 확정되었다.
지역 내에서도 집과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다시 안도가 밀려왔다.
조금 전까지 실망하던 지역이 이제는 다행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마음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조직문화는 괜찮을까.’
‘좋은 동료를 만나면 좋겠다.’
‘업무가 너무 힘들지만 않았으면.’
합격을 바라던 마음은 점수로,
점수는 발령지로,
발령지는 다시 조직문화로 옮겨가 있었다.


욕망은 멈추지 않는다.
하나를 이루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준을 하나씩 올려놓는다.
마치 나만의 돌탑에 조용히 돌을 하나 더 얹듯이.
간절함은 거짓이 아니었다.
다만 상황이 바뀌는 순간,
그 간절함은 조용히 다른 모양의 바람으로 옮겨 갔을 뿐이다.
그것을 마음의 간사함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살아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 순간 그 자리에서 가장 절실한 것을 진심으로 원하며
다음 단계로 건너가고 있으니까.
그때마다의 기도는 늘 진짜였다.



다음 주 목요일 7시에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