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날의 집 안은 고요하다.
파동이 멈춘 듯, 물결 하나 일지 않는다.
행복이는 조용히 제자리를 찾아 눕는다.
햇살이 스며드는 방향을 따라 몸을 옮기고,
기지개를 켜며 하루의 시작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행복이의 호흡은 느리고 깊어지고,
온 세상의 리듬과 동조하듯,
규칙적이고 평온한 진동을 만들어낸다.
산책을 하지 못한 날의 행복이는 다르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새벽 공기를 코끝으로 감지하는 순간부터,
행복이의 내부에서는 무언가가 틀어지기 시작한다.
마치 닫히지 않은 회로처럼 불안정한 진동이 일어난다.
공명되지 못한 에너지가
자신 안에서 되돌아 나오는 것을 막지 못하고,
온 방을 날아다닌다.
그리고 그때,
무엇을 가져와 자신의 전리품으로 삼을지,
행복이는 결정한다.
.
결과는 항상 예측 가능하다.
아내의 실내화와 탁자 위에 놓인 아내의 안경 그리고, 안경닦이.
행복이는 마치 의식을 치르듯 차례대로 입에 물고 온다.
코를 바닥에 대고 냄새를 따라가는 모습,
조심스럽게 물건을 입에 물고 자신의 자리로 가져오는 모습에선,
어떤 간절함이 느껴진다.
특히 안경닦이를 입에 머금은 행복이는 다르다.
씹지도, 흔들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앉아있는다.
그 작은 천 조각이 아내의 손바닥 온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믿는 듯이.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 물건들에는 특정 주파수의 감정이 공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너지는 흐르기만 하지 않는다.
전이가 일어나기도 한다.
특히 감정처럼 비물질적인 파동은,
물질적 대상에 기대어 흔적을 남긴다.
물이 컵의 안쪽 곡면을 따라 맴돌듯,
행복이의 감정도 어떤 사물의 곡률에 스며든다.
그 사람의 손이 자주 머무는 것들.
실내화는 바닥을 따라 움직이는 아내의 궤도,
안경은 아내의 시선이 지나간 경로,
안경닦이는 손의 온기와 가장 자주 만나는 천이다.
행복이에게 그것은 사물이 아니다.
아내의 확장된 존재이자,
붙잡을 수 있는 감정의 매질이다.
행복이가 주인공인 이 시트콤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웃음만 나왔다.
그리고 살짝 질투가 났다.
왜 내 것이 아닌 아내의 것인지.
행복이에게 그 물건들은 단순한 소유물이 아니다.
그것들은 부재를 감지하는 안테나이자,
그리움을 물질화하는 장치이다.
대상항등성(object constancy).
사람이 자리를 비워도,
그 사람이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는 믿음을 갖는 능력.
하지만 강아지에게는 좀 다르다.
사랑을 기억하는 대신,
그 감정의 잔향을 추적한다.
사람이 사라졌을 때,
그 자리에 남은 향기, 온기, 촉감이
'사랑의 물리적 증거'가 된다.
그래서 강아지는 그 물건을 물고 뜯는다.
그건 파괴가 아니라 복원이다.
'네가 여기에 있음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는.
아내의 퇴근이 늦는 날.
행복이는 평소보다 더 많은 물건을 가져온다.
안경, 실내화, 안경닦이, 심지어 아내가 자주 쓰던 머리끈까지.
행복이는 그 물건들을 하나씩 자신의 자리 주변에 배치한다.
작은 제단을 만들듯이.
애잔함이 느껴진다.
이 작은 존재가 부재를 채우려는 방식이,
이토록 간절하고 구체적이라는 사실에서.
아내는 그런 행복이를 보고 소리를 치다가도
어쩔 수 없이 웃는다.
그러면서도 불편해한다.
안경은 비싸고,
실내화는 낡아가고,
안경닦이는 매일 세탁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물건들이,
아내를 향한 행복이의 언어라는 것을 알기에
아내는 조용히 '하지 마'라는 말만 남기고
조용히 물건을 챙긴다.
'존재는 사물에서 숨는다'라고 하이데거가 말했다.
그는 인간 존재를 향한 근본 질문을 '물건'에 대한 사유로부터 출발시켰다.
행복이에게 물건은 단지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형상화이며,
부재의 언어이자,
기다림의 은유이다.
인간은 말로 세계를 만들지만,
행복이는 입과 이빨과 발로 세계를 쓴다.
아침 산책은 행복이의 세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 준다.
온몸으로 냄새를 맡고,
흔들리는 풀을 쫓고,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행복이는 아침 산책을 통해,
관계 속 존재로 살아갈 준비를 한다.
산책 속에서 행복이의 에너지는 바깥 세계와 공명하며 순환한다.
그래서 산책한 날에는 더 이상 부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집 안에는,
진동은 사라지고, 평화가 남는다.
행복이가 물어뜯은 안경은
파괴의 흔적이 아니다.
부재를 감지하는 감각이고,
관계를 복원하려는 행복이의 언어이다.
행복이는 지금 내 옆에서 조용히 숨을 쉰다.
산책을 한 오늘,
행복이의 호흡은 평온하다.
하지만 내일 만약 산책을 놓친다면,
나는 다시 행복이의 작은 의식을 통해, 행복이의 언어를 듣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내 것이 아닌 아내의 것인지 지금도 질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