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에도 에너지는 보존된다

by 늘람

비가 내리면,

행복이는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본다.

그 뒷모습이 우울하다.


창에 부딪히는 빗방울은 작은 우주를 만드는 입자들처럼 흩어진다.

중력의 지배 아래 놓인 그 작은 입자들은

저마다의 경로로 대지와 부딪혀 산산이 흩어진다.


행복이의 마음도 빗줄기처럼 흩어지고, 사라짐을 반복한다.

비 오는 날이면 산책도, 테라스 놀이도 모두 중단된다.

행복이의 에너지는 어쩔 수 없이 내부에서 소용돌이친다.


방출되지 못한 에너지는 고스란히 다른 형태로 전환된다.

가구의 모서리를 물어뜯거나 쿠션을 물고 흔든다.

갑자기 침대 위와 바닥을 오가며 미친 듯이 혼자 달린다.

에너지는 형태만 바꿀 뿐 사라지지 않는다.


아내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진다.

행복이는 그 목소리 속에서 불안한 파동을 느낀다.

파동은 공명하여 집 안의 공기를 잡아 흔든다.


행복이는 눈빛으로 말한다.

'왜 야단을 치는 거지?'

이유를 모른다.


혼자 남겨진 에너지의 혼돈 속에서,

행복이는 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나선다.

행복이의 마음은 비 오는 날의 하늘만큼이나,

흐리고 불확정적이다.


나도 가끔 그렇다.

삶에서 계획이 틀어질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내 안의 에너지는 방황하고,

마음은 길을 잃는다.


하지만 행복이가 그러하듯 우리도 그 에너지를 방출해야 한다.

운동을 하든,

한숨을 쉬든,

창밖을 바라보든.


언젠가

비는 그치고,

하늘이 개이면,

행복이와의 산책은 다시 시작된다.


그 날을 기다리며

행복이와 함께 창밖을 바라본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그 순간도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움직인다.


행복이가 창문 너머 빗소리를 듣는 순간도,

어딘가에서는 나무가 물을 머금고,

어딘가에서는 새로운 생명의 싹이 움튼다.


멈춘 듯 보이지만, 멈추지 않았다.

행복이도, 나도,

비도, 세상도 살아서 숨 쉰다.


행복이의 끊임없는 움직임 안에서,

넘치는 에너지를 본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

뛰어다니고 싶은 마음의 분출을.


집 안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나와 아내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진정시키고 싶지만, 진정이 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놀이용 장갑을 끼고, 행복이와 눈을 맞추며

장난스레 으르렁 거려본다.

에너지를 억누를 수 없으면,

함께 흘려보내야 한다.


창밖을 보던 행복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언제 나갈 수 있는 거야?'

눈빛으로 말한다.


조용히 쓰다듬으며 말한다.

'내일 오전에는 비가 안 온다니까 그때 산책을 가자.'


삶의 많은 순간들이 그렇듯이

정확히 언제 비가 그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정체되지 않는다.


기다림은 정지된 시간이 아니다.

모든 기다림의 순간은

우리 안에 미세한 떨림을 남긴다.

그 떨림이 우리를 조금씩 변화시킨다.

행복이도, 나도,

그 떨림 속에서 조금씩 배우고 성장한다.


행복이는 창가에서 조용히 세상을 관찰한다.

나는 행복이를 관찰한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시간을 견딘다.


하늘이 개이면, 나는 행복이와 다시 산책을 간다.

그때 이 모든 시간들이 하나의 기억으로 남는다.

어쩌면 이 기억은 흩어져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기다림이라는 것은 단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새로운 형태로 변환된 에너지의 탄생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기다림 속에서 조금 더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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