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를 위한 선택, 자꾸 흔들리는 나

by 늘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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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가 밥을 잘 먹지 않는다.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귀와 입 주변, 눈 주변을 자꾸 긁는다.
낮게 깔린 파동처럼 이어지는 그 행동을 처음엔 작은 몸의 일시적 반응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반복되었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병원에 갔다.
식이 알러지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들었다.
앞으로 12주 동안 정해진 건식 사료 외에는 아무것도 먹이지 말 것.
간식도 금지.
어떤 특별한 한입도 철저히 금지.


나는 알고 있다.
지금부터 시작될 싸움은 행복이와 알러지의 싸움만이 아니라,

나와 내 감정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행복이의 밥그릇은 한동안 텅 비어 있었다.
눈으로만 나를 바라본다.
그 눈빛 속엔 질문이 담겨 있다.

왜 아무것도 주지 않아?


그 물음은 단순한 욕구의 신호가 아니다.
신뢰의 언어였고, 관계의 파동이다.
나는 그 파동을 읽었지만,

그 물음에 답할 수 없다.


정확히는

답할 수 없음이 아니라,

답하지 않기로 선택했다.


나의 바램은,

지금의 이 한 끼가 아니라,

12주 뒤 더 건강한 시간을 위한 작은 저항이다.


그런데 그 작은 줄 알았던 저항이,

이렇게도 무겁고,

아픈 일이라는 것은,

막상 시작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관성처럼,

우리는 이미 작은 패턴에 익숙해 있었다.


행복이가 밥을 거르면 나는 늘 더 맛있는 무언가를 찾아냈다.
건식 사료를 안먹으면 습식 사료를 섞어주고,

간식 하나라도, 고기 국물이라도, 아주 작은 한 조각이라도,

해 먹이려고 애를 썼다.


그건 내 안에 오래도록 축적된 정서적 흐름이다.
나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자, 작은 보상의 선물이었다.


익숙한 흐름은 스스로 멈추지 않는다.
한 번 익숙해지면, 그 움직임은 계속된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흐름을 멈춰야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말처럼 쉽게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습관은 질량이다.
한 번 방향을 잡으면 그대로 흘러가고자 한다.


습관에 거스르는 선택을 한다는 건,
그 방향이 바뀌는 순간을 견디겠다는 다짐이다.

충돌 후 되돌아 튀어나오는 공의 충격량이 더 크다.

그 견딤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무겁다.


시간이란 이상한 감각이다.
12주라는 숫자는 생각보다 크다.


오늘 하루,

행복이의 배고픔을 보는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늘어진다.

멀리 있는 미래는 작고 희미하게 보인다.
가까운 현재는 크고 선명하다.

그래서 더 견디기가 어렵다.


지금은 감정이 가속된다.
시간이 팽창하고 있다.
고통이나 결핍의 순간은 유난히 길게 다가온다.


진실을 알아야 한다.
보이는 모든 것이 진실은 아니다.
지금 크게 보이는 감정은 시간의 렌즈를 통한 왜곡이다.

라고 되뇌인다.


어쩌면 작은 평형들은 이미 무너질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맛있는 간식 하나로 얻었던 일시적 평형은,
결국 더 큰 무질서로 이어졌다.


알러지 반응, 긁음, 수면의 불안정.

진정한 질서를 위해,

지금의 혼란과 결핍을 견뎌야 한다.


무언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큰 심리적 무질서를 감내해야 한다.

성장을 위한 시간의 역설.


작은 입자가 높은 장벽을 넘기 위해서는

충분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때때로, 확률적으로 그 장벽을 넘어가는 현상이 있다.

전자 터널링.


감정이라는 장벽이 내 앞에 있다.

그래도 한 번만 주면 안 될까.
지금 너무 힘들어 보여서 그냥 조금만...


그 벽을 넘기 위해 충분한 에너지를 만들어야 한다.

아주 작은 확률에 기대어,

벽을 통과하려는 시도는 어리석음이다.

하지만, 매번 갈등한다.


하루에도 여러번,

다시 선택의 문이 열린다.

선택은 잔인하다.


때로는 좋아하는 것을 버려야, 정말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


오늘 간식을 주는 사랑은,
내 감정을 위한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은,
지금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필요한 길로 이끄는 것이다.

나는 늘 그 사이에서 망설인다.


행복이는 오늘도 나를 바라본다.
나는 밥그릇을 채운다.
정해진 사료만 담는다.
행복이는 망설인다.
고개를 돌린다.


나는 가만히 기다린다.
오늘은 먹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기다려야 한다.

이 기다림은 행복이를 위한 기다림이자,
내 존재를 단련시키는 기다림이다.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선택은 언제나 시간과 싸운다.
현재의 감정과 싸운다.
익숙한 흐름과 싸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작은 집착과 싸운다.


나는 오늘도 선택한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선택을.

그것이 내가 지금, 행복이와 함께 배우는 삶의 물리학이다.


내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다시 떠올린다.
흐름을 거스르는 작은 힘을.
엔트로피의 방향을 잠시 늦추는 고요한 의지의 파동을.


그리고 또 한 번 작은 실험을 시작한다.
행복이의 밥을 준비하면서.

행복이는 오늘 어떤 눈빛을 보낼까.
나는 어떤 선택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반복 속에서,
조금씩 더 깊은 사랑과 더 단단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은 내 글조차도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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