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심장이 요동치며 다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멈춘 줄 알았는데,
심장이 호흡하기 시작했다.
외부가 아닌 내 안에서 퍼지는 소리.
바위틈을 타고 흐르는 미세한 물의 흐름 처럼,
미세하지만 명확한 소리.
재회.
다시 마주한 순간,
내 몸의 어딘가에서
시간이 서서히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기억이 아닌 반응.
오랜만이라는 말보다,
어떻게 지냈냐는 인사보다,
마음보다도,
몸이 먼저 반응한다.
재회는 만남이 아닌 반응이다.
오랜 시간 동안 내 안 깊숙한 어딘가에 숨어,
죽은 듯 몰래 숨쉬던 감각의 기억,
그것의 귀환이다.
시간이 지나 다시 피어나는
종이에 스며들었던 향처럼,
그 사람의 온도,
그 사람의 목소리,
그 사람의 존재가 만든 진동을.
머리는 잊었는데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반복은 동일함이 아니라 차이를 낳는 생성이라는,
들뢰즈의 언어처럼,
재회는
동일함이 아닌 차이를 낳는 생성의 복원이다.
같은 장소,
비슷한 시간.
하지만,
그 때의 그 곳도
그때의 그 시간도 아니다.
그 때의 너와 나도,
아니다.
반복이 아닌 중첩이다.
너의 눈빛에서 과거를 본다.
그 눈빛은 동시에 현재의 너다.
평범한 말,
조심스러운 분위기,
그리고,
허공을 채우지 못한 거리.
비어버린 시간의 밀도.
말 한마디,
숨 쉬는 리듬,
커피를 마시는 모습,
그 안에 지난 시간이 담겼지만,
재회는, 단순한 회귀가 아니다.
과거와 현재가 겹친 한 겹의 시간,
중첩된 감정의 결이다.
중첩은 둘 사이의 모호함이다.
확정되지 않은 상태,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불안정한 진동.
그리고, 그 중첩 속에서 내 몸의 흔들림.
예전의 나,
지금의 내가 동시에
그것을 바라본다.
한 사람의 안에 서로 다른 시간의 공존.
재회는 그 공존의 증거다.
몸을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는 주체라는,
메를로퐁티의 인식처럼,
재회는 언어의 설명이 아닌,
감각의 세계다.
너의 손짓 하나에
나는 기억이 아닌, 감각으로 반응한다.
어깨가 움직임,
눈가에 떠오르는 미묘한 표정의 결.
과거의 떠올림이 아닌,
나를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그것.
재회는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감각의 현재화다.
기억은 종종 정지된 이미지를 만들고,
재회는 이미지를 운동으로 바꾼다.
저장되어 있던 고요한 장면들이
다시 진동하기 시작하고,
나는 알게 된다.
마음으로 기다려왔던 것이 아닌,
몸이 여전히 반응할 준비를 하고 있었음을.
미련이 아닌 존재의 반사.
존재가 내게 다시 다가오자,
응답하는 내 존재.
재회한 날,
아무런 확신없이 함께 오래도록 걸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다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 건,
흐트러졌던 발걸음이 맞춰지던 그 순간 뿐.
완벽한 조화도,
충돌도 아니다.
두 개의 파동이 위상을 간헐적으로 맞추며
공명을 시도하는 듯한 걸음.
새로운 방식의 우리의 중첩이다.
재회에 반가움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만남은 언제나 새로운 하나의 이별을 품듯,
재회 안에서 또 다른 이별이 준비되고 있는지 모른다.
첫 만남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그 예감,
한 번 놓쳤던 것을 다시 놓치지 않으려는,
혹은 다시 놓칠까 두려운 마음.
재회는 기쁨과 함께
또 다른 상실의 가능성을 가진다.
재회는 언제나 첫 만남보다 조심스럽다.
우리는 반가움보다 오래 머무를 수 있을지를,
웃음보다 헤어질 때의 마음을 먼저 걱정한다.
시간은 선형적 흐름이 아니다.
중첩되고 굴절되며
다시 현재로 반사되는 거울이다.
재회는 그 반사의 순간이다.
서로의 안에 있었던 기억을
다시 감각하고,
다시 살아내며,
그 기억과 감각의 중첩점에 새로운 존재감을 만든다.
그래서 재회는 위험하다.
아직 덜 닫힌 문을 다시 여는 일,
이미 끝났다고 믿었던 문장을
다시 읽기 시작하는 일이기에.
감정의 진실이 있다.
끝났다는 말은
종료가 아닌 정지이다.
감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방향을 바꾸거나,
형태를 바꾸거나,
혹은 내 안 깊숙이 스며들어
다시 파동칠 순간을 기다리며,
잠복한다.
재회는 그 파동이 되살아나는 지점이다.
다시 만났지만,
예전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너는 너의 궤도에서,
나는 나만의 궤도에서,
시간을 쌓았다.
그리고,
두 궤도가 다시 한 번 스치는 접점에서,
각자의 존재를 새롭게 감지한다.
낭만적인 이상도 아니고,
단순한 우정의 재확인도 아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확실한 중첩이다.
반복 속에서 생성이 일어난다는 들뢰즈의 언어는,
감정에서도 성립한다.
감정은 과거의 복제품이 아니다.
너는 다시 내 앞에 있고,
나는 다시 네 앞에 있다.
같은 과거를 공유했지만,
다른 현재로 그것을 말한다.
이질적인 두 시간의 흐름이
한점에서 겹쳐질 때,
새로운 감정이 잉태된다.
슬픔도 아니고 기쁨도 아니다.
'살아있음'이다.
너무도 생생한, 너무도 현재다운.
내 안의 파동이 진짜로 울리고 있다는 확신.
감정은 언제나 현재형이다.
기억에서 시작됐지만,
감정은 언제나 현재를 울린다.
재회의 본질.
감정의 현재화, 기억의 생생한 진동,
그리고 존재의 반응.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와의 재회를 품는다.
의식하지 않아도,
감정의 궤도 안에는
다시 만나고 싶은 얼굴,
다시 듣고 싶은 목소리,
다시 건네고 싶은 말들이 잠들어 있다.
모든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어떤 계기, 어떤 감각, 어떤 시간의 교차점을 기다리며,
다만 정지되어 있을 뿐이다.
기억이 아닌 감정으로.
굳이 재회를 꿈꾸지는 않았다.
내 안의 감각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너의 등장으로 나는 다시 요동쳤다.
감정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내 안의 진동에 반응하는 파동이다.
중첩은 마음이 아직 열려 있었음을 증명한다.
재회는 예전으로 되돌려 놓지 않는다.
각자의 진동수를 유지한 채 다시 한 번 겹쳤을 뿐.
겹침의 순간은 짧았지만 갚었고,
짧은 공명이었지만 진폭은 컸고.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했다.
감정은 말보다 먼저 진동하고,
말보다 오래 남는다.
재회의 감정은
언어로는 담을 수 없는 여백을 갖는다.
여백은 나라는 존재의 깊이다.
재회는 기억을 다시 쓰는 사건이다.
과거는 그대로지만,
현재의 나는 변한다.
그리고, 내 안의 진동을 인식하는 법을 배운다.
오늘도 내 심장은 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재회는 끝이 아닌 시작이고, 상처가 아닌 흔적이다.
그 흔적 위에서 나는 다시 나를 살아간다.
누구가를 다시 만나는 일은 결국 다시 나를 만나는 일이다.
재회의 진동 속에서 나의 새로운 파동을 발견했다.
심장이 다시 뛴다.
그 떨림은 예전과 다르고, 지금과도 다르다.
그것은 중첩의 흔적이고,
나는 그 흔적을 따라, 오늘도 조용히, 하지만 생생하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