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위치에너지

by 늘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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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에 마음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날아오르듯 조용히 생겨난다.


일상의 평면과 다른 위치에서 감정의 진동이 시작된다.

누군가의 말,

혹은 지나친 눈빛,

기대를 암시하는 기류.


마음의 밀도를 바꾸고, 감정을 끌어올린다.

바닥에 있던 마음이, 어느새 높이 떠오른다.


어떤 결과도 없다.

하지만 마음은 낙하 준비를 한다.


외부에서 일을 해주어야 위치에너지가 만들어진다.


감정의 높이도 그렇다.

말의 무게,

침묵의 밀도,

타인의 기대가 감정의 고도를 만든다.


높아진 마음은 그 자체로 긴장을 품는다.

움직이지 않아도 흔들리는 감정.

떨어질 수도 있고,

날아오를 수도 있다.

기대는 그렇게, 가능성 위에 선 정지된 에너지다.


기대는 자주 타인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을 대상화하며 내가 아닌 새로운 나를 만든다.


'타자의 시선은 존재를 객체로 만든다.'는 사르트르의 통찰.

시선이 품은 기대는 '되어야만 할 나'를 정한다.

그리고, 감정의 위치를 고정시킨다.


그 자리에 오래 머물수록,

억눌린 자유는 탈주하려는 내면의 충동으로 변형된다.


'의지는 자신을 초월하려는 힘이며,

기대는 그 초월의 환상일 수도 있다.'라고 니체가 말했다.


그러나, 그 환상이 전부 허상은 아니다.

기대는 자신이 가진 감정의 관성을 확인하게 한다.


스피노자의 코나투스처럼,

존재는 자신을 보존하려는 충동 속에 있고,

기대는 그 보존을 위한 감정의 정렬이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작은 메시지 하나가 마음의 평형을 깨뜨린다.

그렇게 일상 속에서 기대의 에너지는 축적된다.


기대가 클수록 불안정하다.

높은 고도에서 감정은 작은 자극에도 크게 휘청인다.

그 휘청거림이 잦아지면,

기대는 낙하를 예고하는 에너지로 바뀐다.


어떤 말은 버틸 수 있다.

어떤 침묵은 감당할 수 없다.

기대의 정점에서 실망은 한순간의 추락이다.


추락의 속도는 빠르고,

마음은 에너지 보존 법칙을 따른다.


다른 형태로 변형되며,

기대는 무너져도 사라지지 않는다.


감정은 운동에너지로 전환된다.

희망이 절망으로,

고요가 분노로,

기대의 파동은 다른 리듬의 감정으로 이어진다.


하이데거의 존재는 미래로 향한다.

기대는 아직 도달하지 않은 가능성에 존재를 투사한다.

가능성이 결과에 닿지 않을 때,

존재는 방향의 상실 속에서 방황한다.

그러나 방향을 잃은 존재는 다시 자신이 서 있던 위치를 돌아본다.


이때 기대는 하나의 질문이 된다.

때로는 타인의 언어로 주어지고,

때로는 자신의 과거에서 비롯된다.

과거에 실현되지 않았던 가능성,

아직 닿지 못한 스스로의 이상.


그 기대가 누구의 것이었는지를 묻는 순간,

감정은 비로소 자신의 위치를 인식한다.

이제 기대는 외부의 힘이 아닌 내부의 리듬으로 유지된다.


기대는 마음의 위치에너지다.

수많은 낙하 속에서,

나를 움직이는 운동에너지로 전환된다.


기대가 무너져도, 존재는 붕괴되지 않는다.

낙하의 과정 속에서 존재는 오히려 새로운 중심을 발견한다.


기대는 에너지다.

아직 사용하지 않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차분히 축적되어 있는 에너지.

언젠가, 다른 에너지로 전환될 준비를 한다.


말하지 않아도,

누구도 모르게,

감정은 기대의 높이를 기억한다.

그 기억은 나를 다시 움직인다.


기대는 고요하다.

움직이지 않지만,

존재를 끌어당기고,

마음을 흔든다.


오늘도 어딘가에 기대 하나가 놓여 있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기대,

충분한 무게를 가지고 있는 그 기대가

말없이 마음을 들어 올린다.


그 고요한 상승 속에서,

나는 움직이지 않는 감정의 진동을 느끼며,

또, 지켜보며 오늘 하루를 차분히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