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빌라 필로티 주차장에 턱시도 고양이가 자주 나타난다.
검은 털 위로 목과 발끝만 하얗게 남겨 둔 채,
마치 예의를 차린 듯 단정하다.
그 단정함은 이상하게도
이름 지어 불러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나에게 건넸다.
유난히 더운 올여름,
기둥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마저 뜨거운 날,
나는 그 아이를 ‘까뮈’라고 부르기로 했다.
첫 만남은 일주일 전 출근길이었다.
뒷블럭 집과의 경계에 있는 벽돌벽 뒤에서
고개만 살짝 내밀고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서늘한 틈을 찾아 숨은 자리에서,
낯선 세계를 경계하면서도
궁금증을 감추지 못하는 눈빛으로 나를 관측했다.
귀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서로를 탐색하는 두 존재가 한순간 같은 프레임 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두 번째는 그다음 날 퇴근길이었다.
달궈진 콘크리트를 피해 옆 차의 그림자에 몸을 반쯤 숨기고 있었다.
기둥과 기둥 사이, 음영이 만든 작은 틈새는
그 아이에게 임시의 피난처였을 것이다.
누구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작열하는 하루를 버티는 자리를 만들어준다.
위층에서 들려오는 에어컨 실외기 소음과 후끈한 바람 소리가
이곳만의 여름 배경음을 만들어냈다.
세 번째는 지난 일요일 오후,
자격증 시험을 보는 딸아이를
시험장에 데려다 주기 위해 내려왔을 때였다.
까뮈는 내 차 밑 그늘로 재빨리 숨어들었다.
까뮈가 있는 상태에서 차를 움직이면 위험할 것이 뻔했기에
나는 딸아이에게 사료를 조금 가져오라고 했지만,
막상 딸아이의 발소리를 감지한 까뮈는 곧장 사라졌다.
그 시간의 만남은 그렇게 어긋났다.
그런데 아이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다시 마주쳤다.
이번엔 벽돌벽 근처 3~4미터 떨어진 그늘진 자리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차에서 사료를 꺼내어
주차장 뒤 모퉁이 쪽에 펼쳐놓아 주었다.
한동안 주변을 살피더니,
내가 바닥에 조심스레 내려놓은 사료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발걸음은 신중했고,
몸을 낮춘 채 언제든 도망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
기둥에 기대어 서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경계와 허기의 방정식이 그 작은 몸 안에서 계산되는 듯했다.
아작아작,
반쯤 열린 주차장 특유의 울림 속에서 그 소리만 유독 선명했다.
나는 먹먹함을 느꼈다.
아작거리는 소리의 귀여움과
경계심이 가득한 몸짓의 안쓰러움,
돕고 싶은 마음과
함부로 개입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같은 진폭으로 흔들렸다.
이런 열기 속에서 시원한 그늘 하나 변변치 않은
거리를 떠도는 작은 생명체를 보니 마음이 더욱 아렸다.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서있다가
남긴 사료를 다시 봉투에 담아 차에 넣어놓았다.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고,
해코지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사료를 남겨두는 친절이 오히려 위험이 될 수도 있다.
때로는 적당한 간격을 두는 것이
위험에서의 보호가 된다.
그리고 오늘,
퇴근길에 또 만났다.
이번에는 좀 더 가까이 다가와
내 발치 곁의 짧은 서늘함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눈빛 속엔 분명한 ‘기억’이 있었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우리는 서로의 좌표계에 기준점이 되어 가고 있었다.
세계는 확률로 흐르지만,
반복되는 관측은 관계를 만들어낸다.
나는 차에서 사료를 꺼내 바닥에 놓고
평소보다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까뮈”라고 불러보았다.
그 순간 고양이는 고개를 들어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귀가 앞으로 기울며,
꼬리가 바닥을 가볍게 두 번 탁 치고 멈췄다.
마치 자신에게 이름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아차린 듯한 눈빛이었다.
이름을 건네는 일은 어떤 존재에게
작은 중력을 부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까뮈’라고 부르는 순간,
그 아이는 그냥 길 위의 고양이가 아니라
주차장의 철학자가 되었다.
이 중간적 공간에서,
집도 아니고 길도 아닌 경계에서,
뜨거운 콘크리트와 서늘한 틈 사이를 오가며,
그 아이는 생존의 가벼움과
존재의 무게를 동시에 품은
사색가가 되었다.
부조리한 세계에서 그저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매일을 견뎌내는 작은 시지프스.
삶은 결국 스쳐 지나간 파동들이 남기는 기록일지도 모른다.
오늘 이 작은 철학자의 눈빛은 나에게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어쩌면 부조리한 세계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그 짧은 응답만으로도
내 마음속에는 충분하다는 느낌이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