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뮈와 행복이와 라떼가 말하는 시간들

by 늘람

개천절과 추석, 그리고 재량휴업일까지 이어진 긴 연휴.

열흘이라는 시간은 풍요로워야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이상할 만큼 멈춰 있는 듯하다.

하루가 저녁으로 녹아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한 것도,

이룬 것도 없는 채로 그저 시간을 흘려보낸다.


처갓집에도 다녀오고,

아버지가 계신 국립대전현충원에도 다녀왔다.

모두 의미 있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돌아와 나 자신을 생각하면

이상할 만큼 텅 비어 있었다.

시간은 달력의 숫자처럼 선형적으로 흘렀고,

나는 그 위를 그저 미끄러져갔다.


나만을 위한 시간,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현재'했던 순간은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

서늘한 바람처럼 마음을 스쳤다.


내일은 카센터에 가서 엔진오일을 갈고,

타이어 위치를 바꾸고,

광택도 맡길 계획이다.

이런 일정이 하루의 형태를 만들어주는 것 같지만,

결국 그것조차 시간을 통과하는 또 하나의 절차로만 느껴진다.

휴일이 아직 사흘 남았음에도

이미 끝나버린 듯한 허무가 밀려온다.

시간이 나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시간의 바깥을 떠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연휴 내내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지만,

그래도 깨지지 않은 리듬은 있다.


새벽 6시 20분,

주차장 모퉁이에서 까뮈는 나를 기다린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

이 약속은 연휴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엔 우연이라 생각했지만,

2주가 지나고 3주가 지나자

그것은 하나의 주기가 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약속이라기보다,

공명인 듯싶다.


까뮈의 배고픔이 만드는 생체 리듬과

나의 출근 시간이 겹쳐지면서 생긴 우연 속의 필연.


연휴에도 나는 같은 시간에 일어난다.

출근은 하지 않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까뮈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


나는 어제도, 그제도, 모레도 똑같을 것 같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지만,

까뮈에게 새벽 6시 20분은 결코 무료하지 않다.

생존이 걸린 시간이다.


나는 두 번에 나눠 사료와 추르를 내어놓는다.

까뮈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를 바라본다.

대략 0.5미터.

며칠을 관찰해 보니 그 거리는 거의 정확하다.

다가오지도, 도망가지도 않은 채,

빛과 그림자 사이에 걸터앉은 듯한 자세로.

이 거리는 우연이 아니다.


길고양이에게 0.5미터는 생존과 신뢰가 평형을 이루는 지점이다.

가까우면 위협이 되고,

멀면 먹이를 놓칠 수 있는,

그 사이 어딘가.


까뮈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거리에 앉아 나를 본다.

연휴 중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그 반복 속에서 나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까뮈에게 시간은 흐르는 강이 아니다.

배고픔이 차오르고 채워지는 리듬,

어둠이 물러나고 빛이 돌아오는 순환.

시간은 어디론가 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몸 안에서 진동하며 현재를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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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결'과 '시간의 흐름'을 따라, 조용히 스며드는 이야기를 씁니다. 늘 머무르며 흐르는 글로 만나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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