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임말이 만드는 경계

by 늘람

언어는 의미를 숨기는 방향으로 진화하지 않는다.
이해를 유지하면서, 에너지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에너지는 언제나 더 안정된 상태를 향해 이동한다. 높은 곳에 있던 물은 아래로 흐르고, 온도가 높은 곳의 열은 낮은 곳으로 이동하며, 전위차가 존재할 때 전류가 흐른다. 이 모든 과정은 하나의 공통된 방향을 갖는다.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줄이는 방향이다.


언어 역시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반복되는 표현을 줄이고, 긴 이름을 압축하며, 가능한 한 적은 노력으로 의미를 전달하려 한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러나 한 번 의미가 공유된 집단 안에서는, 전체를 다시 펼쳐 보일 필요가 없다. 일부만 남겨도, 전체는 복원된다.


줄임말은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같은 집단 안에서 그것은 효율을 만든다. 의미는 빠르게 전달되고, 이해는 지연되지 않는다. 줄임말은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전달에 필요한 에너지를 줄인다. 그것은 안정된 상태다.


그러나 그 안정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 줄임말은 모두가 이해한다는 전제하에서만 안정하다.


얼마 전 뉴스에서 ‘학맞통(학생맞춤통합지원)’이라는 표현을 들었다. 학생이 겪는 학습, 심리, 복지, 건강, 진로 문제를 학교와 교육청, 지역사회가 함께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라고 한다. 올해 3월부터 전국 학교에서 본격 시행되는 정책이다.


순간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그 단어는 낯설었다. 정책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 정책을 가리키는 언어는 나에게 도달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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