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켜고 책상 앞에 앉은 것이 오랜만이다.
까뮈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면서,
사실상 내 책상은 사라졌다.
그 안에 쌓여있던 나의 흔적들과 상념들도 함께.
나는 내 공간을 잃었다기보다
내 중심을 잠시 옮겨놓은 상태였다.
공간은 단순한 면적이 아니다.
그곳은 생각이 응축되는 자리이고,
내가 나로 돌아오는 좌표다.
그 좌표가 사라지자,
집 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쌓여 있던 물건들,
언젠가 쓰겠다고 남겨둔 가능성들,
이미 끝난 선택들이 찌꺼기로 남아
여전히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버리기 시작했다.
물건을 버리는 일은
단순히 공간을 비우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미련을 정리하는 과정’에 가깝다.
한때 필요했지만 지금은 아닌 것,
언젠가를 위해 붙잡고 있었지만 사실은 오지 않을 시간의 잔재.
가만히 두면 쌓인다.
먼지도,
생각도,
정리하지 않으면 침전된다.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돌보지 않으면,
흘려보내지 않으면,
그 찌꺼기는 쌓이고 또 쌓인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많은 일들이 겹쳤다.
까뮈의 포획과 중성화 수술,
행복이의 중성화 수술,
심지어는 갑작스러운 방광염으로 인한 라떼의 병원 방문.
집 안의 생명들이 내 시간을 통과했고,
나는 그들을 돌보는 동안
나 자신의 정리를 미루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려'
배려는 삶에 있어 중요다.
하지만, 그 배려를 받은 사람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관계 속에서는 거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마찰을 줄이기 위해 표면을 다듬었지만
상대가 그 거칠음을 본 적이 없다면
마찰 감소는 기록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려는 중요하다.
상대가 알지 못해도
배려는 나라는 존재를 형성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조금 더 부드러운 선택을 하는 사람이 되고,
조금 더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다만, 인식되지 않는 배려는
오히려 관계의 균형을 서서히 무너뜨릴 수 있음을 안다.
이번 겨울 정리를 통해
‘버림’이 단지 물건을 향한 행위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버려야 할 것은
쓰지 않는 물건만이 아니었다.
알아주길 바라던 기대,
당연히 이해받을 것이라 믿었던 마음,
말하지 않아도 전해질 것이라는 착각.
삶은 그렇게 찌꺼기를 남긴다.
버림은 냉정이 아닌 선택이다.
닫힌 계에서는 완벽이 가능하지만,
삶은 언제나 열려있다.
삶 속에서는
새로운 사건과 감정이 끊임없이 흘러 들어온다.
그렇기에 주기적인 방출을 통해 질량을 줄여야 한다.
이번 겨울,
물건을 버리며 가능성을 정리하고,
배려를 돌아보며 기대를 덜어낸다.
그리고 이제,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이동식 책상,
필요에 따라 나의 공간이 되는 나만의 책상.
공간이 돌아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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