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생각하는 정답이 내겐 오답일 수 있습니다

나의 답은 수많은 답중의 하나일 뿐

by 늘람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이렇게 표현 하면서도 늘 이 말이 성립하는지 여부에는 의문을 가진다.

단지 내가 지금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기에 이렇게 표현 할 뿐이다.


우리 어머니는 나와는 사뭇 다른 생각의 방식을 가지고 계시다.

그래서일까.

어머니는 나에 대해 무척 잘 안다는 믿음을 가지신다.

그리고 그 믿음 속에서 하시는 사소한 일들이 내게는 늘 오답으로 도착한다.

게다가 오답이라 말씀 드리고, 하지 말라 부탁을 드려도

어머니의 오답은 늘 멈추지 않는다.


믿음과 사랑에서 나오신 결론이 늘 오답일 때

나는 죄송하고 또 슬퍼진다.


많은 사람들은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안에서

타인에 대해 너무 빠른 판단을 내린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그에 대해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그 판단은

대부분 몇 개의 장면에서 시작된다.
몇 번의 행동, 몇 번의 선택, 몇 번의 대화.
그렇게 모은 조각들이 하나의 결론이 된다.


그리고 그 결론은

자연스럽게 그 사람 전체를 대신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건 '오만'이 아닐까.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일부이고,
그 일부조차 연속된 기록이 아닌
기억 속 몇 개의 단편이 모인 편집된 기록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 조각만을 이어 붙여 하나의 답으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저 사람을 잘 안다고 말한다.

더 큰 문제는 그 답이

하나의 해석이 아닌 하나의 확정된 결론이 된다는 것이다.


확정된 순간
그 사람의 다른 가능성은 더 이상 고려되지 않는다.


흔히 누군가에 대해 안다고 판단하는 것은

확률적 통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의 삶에서는

판단의 근거가 되는 특정 상황이

수학적 오류를 상쇄할 만큼 자주 중복되지 않는다.



정확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표본과 반복된 상황이라는

오차를 줄일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서는

같은 상황은 반복되지 않고
같은 상태도 유지되지 않는다.


같은 사람조차도 시간과 환경에 따라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작은 표본으로 전체를 설명하려 한다.


부족한 표본, 불균일한 조건.

이 안에서 만들어진 단정적 결론은

판단이 아닌 추정에 가깝다.


사람을 하나의 답으로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은 계속 변화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지금 현재의 모습이 그 사람 전체를 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어떤 판단도

그 사람을 완전히 설명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히하게 되는 판단은 정답이 될 수 없다.

단지 그에 대한 수많은 답 중 하나의 답이 될 뿐이다.


나는 타인을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

그냥

그 순간 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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