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가능성 위에서 움직이는 세상

관측할 수 없거나, 0에 가까운 것들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방식에 대하

by 늘람

벽을 향해 공을 던진다.

공은 벽에 부딪혀 튕겨 나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과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 말은 옳다.

그러나 정확하지는 않다.


공이 벽을 통과할 확률은 0이 아니다.

우주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1초마다 한 번씩 던져도 일어날까 말까 한 수준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없는 것이 아니다.

다루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 구분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과 일어날 수 없다는 것.

두 문장은 다른 문장이다.

그러나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확률을 다루는 과정에는 항상 기준이 개입한다.

어느 지점 이하의 값은 무시된다.

거의 0에 가까운 확률,

관측되지 않는 영역,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항들.

그것들은 어느 순간부터 없는 것처럼 다뤄진다.

그러나 분포의 꼬리는 끝까지 0이 되지 않는다.


이 방식은 자연스럽다.

모든 가능성을 유지하면 계산은 복잡해지고,

모델은 작동하기 어렵다.

따라서 선을 긋고 그 아래를 지우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요에 가깝다.

문제는 그 이후에 남는다.

지워진 것이 없어진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관측도 같은 구조를 따른다.

측정되지 않는 것은 설명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는 것은 제외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관측되지 않는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구분되지 않게 된다.

그러나 관측은 존재의 조건이 아니다.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일 뿐,

존재를 결정하지 않는다.


여기서 하나의 혼동이 생긴다.

모르는 것과 없는 것,

측정되지 않은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이 둘은 다르지만 자주 같은 것으로 취급된다.

무지는 부재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은 종종 증거처럼 여겨진다.


이때 제거되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가능성이다.

그리고 특정 구조에서는

이 제거가 결과를 바꾼다.

초기 조건의 미세한 차이는

시간이 흐르며 전체의 상태를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거의 0에 가까운 조건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 변화는 지워진 항들 속에서

이미 준비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워진 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었을 뿐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세계는 드러난 상태들의 집합이 아니다.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들이 그 바탕을 이룬다.

드러난 것은 그중 일부가 특정 조건에서 선택된 결과다.

여러 상태의 중첩 중 하나만 드러나는 것처럼,

현실은 가능성이 소멸한 결과가 아니라 잠시

고정된 단면이다.

확정성은 결과라기보다 해석의 방식에 가깝다.

지워진 가능성은 소멸하지 않는다.

보류된 상태로 남는다.

그리고 그 위에서 현재의 상태는 계속 갱신된다.


다시 그 공으로 돌아간다.

벽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문장은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 아니었다.

계산의 효율에 관한 선언이었다.

정확히는

지금까지 관측된 적 없고,

우리가 다루는 모델 안에서는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였다.


공은 여전히 벽 앞에서 튕겨 나온다.

그러나 세계는 그 선언과 무관하게

지워진 것들을 포함한 채로 계속 움직인다.

그 공이 언젠가 벽을 통과할 가능성은

계산 밖으로 밀려났을 뿐,

소멸하지 않았다.


현실은 완성된 결과가 아니다.

가능성의 일부가 드러난 하나의 단면이다.

그 단면의 바깥에는

여전히 제거되지 않은 것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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