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의 날씨는 기억나지 않지만
오늘의 날씨는 상쾌하다.
아침을 누르던 겨울의 무게도
봄햇살의 따스함에 향기가 되어,
하루의 시작을 상큼함으로 채운다.
그래서 일지는 모르지만,
근무하는 토요일이라 출근을 하는 아내를 태워다 주면서
퇴근길에 만나 행복이와 함께 산책하자는 약속도 잡았다.
집에 돌아와 늦은 아침을 먹고
커피를 한 잔 내려 테라스로 나갔다.
따라나온 행복이는 연신 킁킁 소리를 내며
공기와 흙과 나무들의 냄새와
모아놓은 쓰레기통의 냄새까지 맡아댄다.
행복이는 확실히 눈이나 귀보다
코가 더 빠르게 봄소식에 반응한다.
역시 비글이다.
테라스에 있는 홍매화는 두개의 꽃을 피웠다.
앙상한 가지만 보이는 벗나무의 끝에도 꽃눈이 맺히기 시작했고,
세가지 색의 꽃을 피운다는 일월송도
아직 색을 알 수 없는 꽃 눈과 잎이 함께 돋아나기 시작했다.
이 아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오로지 신기하다 뿐이다.
홍매화도 벗나무도 작년에는 꽃을 피우지 않았다.
몇년되지 않은 묘목을 화분에다 식재했고,
넓고 깊은 땅을 터전으로 살아야할 그 아이들에겐
너무나 가혹한 환경이었기에
어쩌면 당연하고 한편으론 미안했다.
그런데 올해는 꽃을 피운다.
지난해,
꽃 한송이 피우지 못한 봄을 지나
잎까지 태우던 뜨거운 여름을 버텨내고
시들어가는 가을과
숨쉬는 모습조차 느낄 수 없던 그 차가운 겨울동안
그 아이들은 얼마나 쉼없는 노력을 했던 것일까.
그저 무심한 눈으로 지켜보며,
살았을까 죽었을까만을 고민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
그리고, 올 봄.
이렇게 꽃을 피워낸 그 아이들에게 그저 고맙다.
봄의 향기에 취해
코를 하늘로만 향하는 행복이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평소에는 잘 시간인 까뮈가
분리공간 틀 앞에 붙어앉아
매쉬망 사이로 앞 발을 길게 뻗어
지나가는 행복이를 부른다.
오늘은 그 발짓에
봄이 왔냐고 묻는 까뮈의 물음이 보인다.
기억이 났다.
그랬었다.
지난 토요일 아침까지만 해도
꽃을 피우는 홍매화와 벚나무와 일월송이 있는
이 테라스에는 짐이 가득했고
나는 그걸 정리하고 버리고 치우며
내 마음의 찌꺼기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지난 주의 고단함이 있었기에
어쩌면 오늘
다르지 않은 날을 다르게 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