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무차원의 입자들

제11화 숨겨진 기하

by 늘람

린은 그날, 기하학이란 무엇인지 처음으로 온전히 이해했다. 그것은 단순한 수학적 개념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적 구조를 보는 예민한 감각이었고, 세계가 스스로를 직조해 나가는 틈새의 언어였다. 그녀는 고등학교 생활의 마지막 무렵, 졸업을 불과 몇 달 앞둔 시점에서야 비로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지탱하는 구조가 눈에 보이지 않는 섬세한 힘들의 그물망으로 짜여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아니 세포 하나하나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날 오후 수업 시간, 김 선생님은 원뿔의 전개도와 평면에서의 정다각형 분할에 관해 칠판에 도형을 그려가며 설명하고 있었다. 교실의 공기는 한없이 무거웠다. 졸업을 앞둔 친구들은 이미 마음이 대학 입시 결과와 각자의 미래로 향해 있었고, 교실은 시끌벅적한 사적인 대화로 가득했다. 하지만 린만은 달랐다. 그녀는 선생님이 그려놓은 기하학적 도형들 위에 보이지 않는 '응시'가 겹쳐 있음을, 마치 투명한 필름이 덧씌워진 것처럼 선명하게 감지했다.

그녀는 수업 노트를 펴지 않은 채,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손끝으로 스며드는 햇빛의 미세한 각도와 방향성, 바람에 의해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유리창의 미묘한 떨림, 교실 안을 채우는 다층적인 소음이 서로 겹쳐지며 하나의 완벽한 기하 구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설계도가 그녀의 의식 속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이 물리적인 교실이 아니라, 교실이라는 형태가 형성되기 이전의 위상학적 공간 안에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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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결'과 '시간의 흐름'을 따라, 조용히 스며드는 이야기를 씁니다. 늘 머무르며 흐르는 글로 만나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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