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무차원의 입자들

제10화 메아리의 흔적

by 늘람

공명이 사라진 자리에는 흔적이 남지 않는다. 린은 그것을 이론적으로 알고 있었다. 침묵 속에 파동이 없다면, 당연히 그 흔적도 남을 수 없는 법이었다. 그러나 그날, 교실을 나서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돌려 복도를 돌아보았다. 분명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가 지나갔다는 확신이 그녀의 피부 위에 서린 공기처럼 남아있었다. 그것은 흔적도 남기지 않는 흔적, 존재가 지나간 빈자리의 응시였다. 만져도 느껴지지 않고, 보아도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있었던' 무언가.

그날 새벽, 창문으로 희미한 푸른빛이 스며들 무렵, 린은 깊은 꿈을 꿨다. 꿈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잊고 있었고, 말할 수도 없었으며, 오직 방향도 없는 감각만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것은 공기 속에서 퍼지는 흔들림도, 빛의 반사도 아닌, 더 근원적인 진동 없는 감지였다. 마치 모든 감각이 사라진 자리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존재의 압력 같았다.

꿈속에서 린은 알 수 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어디서 본 적 없는, 그러나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한 공간이었다. 그녀는 어떤 낡은 한옥의 마루 위를 걷고 있었고, 발 밑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그것은 소리라기보다는 기억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그 소리가 귀가 아닌 시간의 깊은 곳에서 들리는 것임을 알았다. 마루는 마치 오래전에 있었던 시간의 단면이었고, 린은 그 위를 따라 걷는 감각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걷는 자와 걸어지는 길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 상태.

마루 끝에는 푸른빛 문이 있었다. 그녀가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돌리자, 문은 열리지 않고 그대로 사라졌다. 마치 그것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리고 그 문 뒤에 있던 공간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곳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장소였고, 그 장소 안에서 린은 어떤 '지나감'을 느꼈다. 빈 공간을 스쳐가는 존재의 그림자도 아닌, 그저 순수한 '이동'의 감각만이 남아있었다.

그 지나감은 파동도, 냄새도, 흔적도 남기지 않았지만, 린의 감각 깊은 곳에 응결된 메아리처럼 분명히 남아 있었다. 그것은 손에 잡히지 않는 실재감, 모든 감각이 소멸된 자리에 남은 존재의 부재였다. 그녀는 그 공간을 '무反사 공간'이라 명명했다. 반사가 없는 공간, 즉 존재가 아무것도 돌려받지 않는 자리. 그곳에서는 자신이 던진 신호가 결코 돌아오지 않고, 그래서 그 존재는 영원히 미확인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꿈에서 깨어난 린은 머리맡의 볼펜을 더듬어 찾아 곧장 일기장에 쓰기 시작했다. 손은 떨렸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맑았다. 파동 없는 공명은 흔적 없는 메아리를 남긴다. 그것은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가장 깊게 남는다. 그 문장을 쓰면서, 그녀는 이 역설이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자신이 체험한 실재임을 깨달았다.

창밖으로는 아침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안갯속에서 나무 실루엣이 희미하게 떠오르는 모습이 마치 꿈속 풍경의 연장처럼 느껴졌다. 린은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일기장에 덧붙였다. 반사되지 않는 메아리는 어디로 가는가? 그것은 어쩌면 시간의 주름 속에 접혀 있는지도 모른다.

학교에 도착한 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주한 등교 시간, 복도를 가득 채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발소리가 그녀의 귀에는 마치 수면 아래에서 들리는 것처럼 왜곡되어 들려왔다. 그녀는 친구들 사이를 조용히 지나가면서도 그들 안에서 들리지 않는 파형을 느꼈다. 마치 모두가 자신만의 공명을 비가청의 차원으로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 각자의 속에 무수한 무反사 공간이 숨겨져 있는 듯한 느낌.

첫 수업은 수학이었다. 선생님이 칠판에 회전체의 부피 공식을 설명하는 동안, 린은 그 수식 속에서 빈 공간을 보았다. 회전하는 것과 회전되는 공간 사이의 관계. 모든 수식은 그 사이의 관계를 정의하는 것이지만, 린은 이제 그 관계 자체가 아닌, 관계가 존재하기 위한 '빈자리'에 주목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옥상에 올라간 린은 태윤과 마주쳤다. 태윤은 벽에 기대어 아무 말 없이 흐릿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린도 그 옆에 조용히 섰다. 둘 사이에는 말이 필요 없는 이해가 흐르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 마침내 태윤이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내 목소리가 나한테 들리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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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결'과 '시간의 흐름'을 따라, 조용히 스며드는 이야기를 씁니다. 늘 머무르며 흐르는 글로 만나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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