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뮈

by 늘람

새벽 5시.

알람은 맞춰놓았지만 그 소리로 하루가 시작되는 날은 많지 않다.

먼저 깨우는 것은 행복이의 분주한 움직임이거나

몸을 기대며 건네는 작은 접촉,

어떤 날은 분리된 공간에서 들려오는 까뮈의 덜컹거리는 소리와

밤새 이어졌을 울음의 흔적이다.


나의 아침은 언제나 소리가 먼저 도착한다.

잠든 의식은 빛보다 느리게 깨어나고,

그래서 나는 늘 들리는 소리를 따라 하루를 시작한다.


자리에서 나와

덜 깬 몸을 일으켜 커피를 내린다.

버튼을 누르면 커피머신은 짧은소리를 내며 커피를 내려보내고,

거품기 안의 우유는 데워지며 동시에 부풀어 오른다.

정해진 압력과 온도,

그리고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늘 비슷한 상태가 만들어진다.


나는 내린 커피를 들고 테라스로 나간다.

그 사이 어디선가 까뮈는 이미 나를 보고 있다.

소리도 기척도 없이.

관측은 늘 조용하게 이루어진다.

관측되는 쪽만이 뒤늦게 그것을 알아차릴 뿐이다.


어떤 날은 창가로 나와 앉아 밖에 있는 나를 유심히 바라본다.

그 순간 밤새 이어지던 울음은 멈춘다.

그저 바라본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선이

오히려 가장 오래 남는다.


다시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정리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도시락을 챙기고 씻고 올라와 아이들의 밥을 준비한다.

항상 행복이가 먼저다.

그다음이 까뮈다.

순서는 거의 바뀌지 않는다.


반복되는 순서는 시간 속에서 굳어지고,

어진 배열은 이유 없이도 유지된다.


행복이의 밥을 챙기는 동안에도

까뮈는 어느새 내려와 앉아 그 모습을 보고 있다.

무심한 듯, 하지만 계속해서.

바라보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이미 하나의 관계다.


문을 열면 까뮈는 조금 뒤로 물러난다.

거리는 늘 먼저 만들어진다.

그러다가 "까뮈야, 밥 먹자" 하는 소리가 들리면

캣타워 위 작은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부름과 물러남이 같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순간,

나는 그 선택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대로 지켜본다.


먼저 화장실을 치우고 새 밥그릇을 준비한다.

사료를 담고 그 위에 연어 트릿을 몇 개 올린다.

커튼을 걷고 손을 넣어 목 뒤와 턱을 만진다.

까뮈는 그때만큼은 움직이지 않는다.

완전히 허용된 접촉은 아니지만

완전히 거부된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문다.


추르를 꺼내 들면 까뮈의 얼굴이 조금씩 앞으로 나온다.

보이지 않는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냄새를 따라 끌리듯 움직인다.

망설임과 확신이 같은 속도로 섞인 듯하다.


추르를 다 먹으면 연어 트릿 몇 개를 손으로 집어 하나씩 먹인다.

까뮈는 그 작은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받아먹는다.

손과 입이 닿는 그 짧은 순간, 서로의 거리는 잠시 줄어든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밥그릇을 들어 보여주며 말을 건넨다.

"까뮈야, 밥 먹어."

그 말을 듣고도 까뮈는 바로 먹지 않는다.

내가 나가고 나서야 연어 트릿부터 먹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사료를 먹는다.


밥을 먹는 시간조차 나와 겹치지 않게 두는 것.

그건 아마 까뮈가 스스로를 유지하는 방식일 것이다.


퇴근 후에도 순서는 같다.

행복이, 그리고 까뮈.

질서는 반복되고 반복은 서서히 신뢰로 바뀐다.

신뢰는 확신이 아니라 어긋나지 않는 시간의 축적이다.


저녁을 먹고 테라스로 나가 행복이와 놀아준 뒤

까뮈의 공간으로 들어가 앉아 책을 읽는다.

그 사이 까뮈는 자기 집 안에서 나를 냄새와 소리로 지켜본다.

어떤 날은 집에서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 웅크리고 앉아 그저 바라보기도 한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만 본다.


그 시선 속에 앉아 있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까뮈는 나를 이해하지 않는다.

이름도 붙이지 않고, 이유도 묻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바라본다.

그리고, 그 아무 의미 없는 관찰이

이 공간 속의 나를 흐트러짐 없이 붙잡아 두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해받을 때보다 아무 의미 없이 관측될 때

나는 나의 존재를 더 확실히 느낀다.


놀이를 시작할 때 까뮈는 신호를 보낸다.

바닥에 놓인 스크래처의 끝을 조용히 긁는다.

그때 나는 장난감을 들고 문 밖에서 팔을 넣는다.

놀이 시간에는 문이 열려도 까뮈는 도망치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까뮈는 깃털을 향해 앞발을 빠르게 움직인다.

잡고, 끌어당기고, 몸을 낮춘다.

품에 안듯 끌어안고 누워서 뒹군다.

그러다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나 조금 더 먼 곳으로 물러난다.

그리고 다시 나를 본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이 리듬이 우리 사이의 균형을 만든다.

놀이가 끝나면 가끔 고양이 티비를 틀어준다.

그때의 까뮈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

눈과 고개만 움직이고 주변의 변화에는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하나의 대상에 모든 감각이 모이는 순간, 세상은 잠시 단순해진다.


까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혼자 있을 때는 계속 울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 소리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가까이에 앉아 있으면 그저 바라보며 몸을 편히 늘인다.

그러다 손을 가까이하면 여전히 움찔하며 피한다.


가까움과 접촉은 같은 것이 아니다.

그 차이를 나는 아직 다 알지 못한다.


밤이 되면 까뮈는 거의 잠을 자지 않는다.

문을 조금 열어 두어도 나올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저 혼잣말처럼 조용히 운다.

나는 그 소리를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 채 곁에 있는 이 상태가

지금 우리 사이에 허용된 가장 정확한 거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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