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라고 일어나는 시간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행복이와 까뮈의 밥은 언제나 내가 챙겨야 한다.
그렇게 오늘 아침도 다른 날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시작됐다.
두 아이의 아침을 챙겨 먹이고 나서야 책을 꺼내 들었다.
나에게 책을 읽는 시간은
바깥으로 향해 있던 감각을 다시 안쪽으로 돌려놓는 시간이다.
그렇지만, 그 시간조차 완전히 나에게 속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미 이 공간에는 나와 리듬이 다른 두 존재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책을 읽는 동안 까뮈는 분리공간 안의 책상 위에 앉아
나를 무심한 듯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은 분명 나를 향해 있었지만 그 안에는 어떤 개입도 없었다.
다가오지도 않고, 부르지도 않는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 시선은 어떤 의미를 요구하지도 않고, 관계를 바꾸려 하지도 않는다.
단지 지금 이 상태를 그대로 두는 방식으로 머문다.
측정은 이루어지지만 계의 상태는 달라지지 않는 이상적인 관측을 하는 듯하다.
관찰은 존재하되 교란은 없는, 그런 시선이다.
그래서일까, 까뮈와의 관계는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존재는 분명 연결되어 있지만 그 연결은 힘을 거의 전달하지 않는다.
서로의 궤도를 바꾸지 않는 거리, 끌어당기지도 밀어내지도 않는 상태.
가끔은 그 거리가 안정으로 느껴지지만,
어떤 순간에는 그 안정이 곧 거리로 느껴지기도 한다.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과, 닿아 있지 않다는 감각이 동시에 존재한다.
까뮈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가끔 그 시선을 잊는다.
잊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거기 있었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는 모순된 존재감이다.
까뮈와 달리, 행복이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내가 책을 읽는 동안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장난감을 물고 오고, 다시 다른 장난감을 물고 오고, 또 다른 것을 물고 온다.
그 반복은 단순한 행동이라기보다,
나와의 상태를 갱신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는 듯하다.
내가 책에 시선을 두는 순간마다, 그 시선을 자기 쪽으로 끌어오기 위해 계속해서 움직인다.
모든 움직임이 한 방향으로 수렴하고, 그 방향은 언제나 나를 향해 있다.
'행복아, 책 좀 읽을게.'라고 말해보지만, 그 말은 행복이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언어는 이 관계에서 중요한 매개가 아니다.
오히려 거리와 접촉, 움직임과 반복이 더 직접적인 신호가 된다.
책을 계속 읽고 있자 행복이는 결국 무릎 위로 뛰어 올라와 연신 얼굴을 핥기 시작한다.
그 순간 거리는 완전히 사라진다.
경계는 흐려지고, 서로의 상태는 즉각 섞인다.
두 계가 더 이상 분리된 채로 존재하지 않고,
하나의 상호작용하는 계로 묶이는 순간이다.
나는 책장에서 손을 떼고, 행복이의 등을 쓸어내린다.
그 온기는 아주 즉각적이고, 아주 구체적이다.
어쩔 수 없이 책을 내려놓고 행복이를 만져준다.
옆으로 내려놓으면 곧바로 다시 올라온다.
같은 방식으로, 같은 거리로, 다시 나에게 닿는다.
이 반복은 단순한 집착이 아니라, 관계를 끊임없이 현재로 유지하려는 움직임처럼 보인다.
과거도, 미래도 없이, 오직 지금 이 순간의 접촉만으로 관계를 정의하는 방식.
행복이 곁에 있으면 나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다.
때로는 그게 고맙고, 때로는 그게 조금 버겁다.
그 모습을 까뮈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움직이지도 않고, 개입하지도 않는다. 그저 바라본다.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무런 변화 없이 상태가 유지된다.
같은 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의 관계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 사이에서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는 너무 멀어서 가끔은 섭섭하고, 강아지는 너무 가까워서 가끔은 버겁다.
하나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거리를 남겨두고,
다른 하나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거리를 지운다.
그렇기에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필요할 때는 다가오고, 필요할 때는 물러나는,
관계의 거리를 스스로 읽고 조절할 줄 아는 존재.
항상 일정한 궤도를 유지하면서도, 필요하면 접근할 수 있는 그런 상태.
하지만 사실 그건 새로운 존재의 문제가 아님을 안다.
이미 나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거리 사이에서 동시에 살고 있다.
하나는 다가오지 않는 관계, 다른 하나는 멈추지 않는 관계.
그리고 나는 그 둘 사이에서 매일 아침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된다.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적절한 거리'라는 것은
하나의 고정된 값이 아닌
서로 다른 거리들이 동시에 존재할 때 만들어지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평형이란 하나의 값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라그랑주 점처럼 변화 속에서 유지되는 상태이다.
결국 나는 그 중간에 있는 어떤 존재가 나타난다 해도
행복이나 까뮈를 그 존재와 바꾸는 일은 절대로 생기지 않을 것임을 안다.
내가 원했던 것은 어떤 하나의 성격이 아니라,
이 서로 다른 거리들이 만들어내는 지금의 이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가까움과 멀어짐이 동시에 존재할 때,
관계는 하나의 방향으로 고정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 있는 상태로 유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