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지 않는 그림자

무차원의 카오스 12화

by 늘람

린은 이른 아침, 피부를 스치는 이질적인 감각에 눈을 떴다. 창문 틈으로 스며든 햇살은 시곗바늘처럼 벽과 인형장을 천천히 훑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래 드리운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빛은 분명히 이동하고 있었다. 햇살의 각도가 미세하게 바뀌며 방 안의 모든 것을 서서히 재배열했다. 하지만 그림자만은 마치 무언가를 붙잡고 있는 듯 그 자리에 붙박여 있었다. 그림자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직관이 린의 의식을 스쳤다. 그 검은 공간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정지된 무게감이 존재했다.

린은 이불을 걷어내고 바닥에 발을 내려놓았다. 작은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그림자가 미세하게 움찔했다. 린은 숨을 참았다. 하지만 그림자는 다시 완벽하게 정지해 있었다.

부엌에서는 토스트가 구워지는 달콤한 향기가 퍼지고 있었다. 엄마는 계란을 프라이팬에 깨고 있었고, 아빠는 스마트폰을 보며 뉴스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림자가 안 움직였어."

린의 말에 엄마가 고개를 들었다. 린의 목소리에는 평소와는 다른, 묘하게 진중한 울림이 있었다.

"응?"

"햇살은 움직였는데, 그림자는... 그 자리에 있었어. 가만히."

아빠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웃으며 말했다.

"음, 아침에는 햇빛 각도가 천천히 바뀌어서 그럴 수도 있지. 우리 눈에는 잘 안 보이는 거야."

엄마도 고개를 끄덕이며 접시에 토스트를 올렸다.

"맞아. 해가 천천히 뜰 땐 그렇게 보일 수 있어. 자, 이제 아침 먹자."

린은 조용히 밥숟가락을 들었다. 입안의 밥은 퍽퍽하게 말라 있는 듯했다. 씹히는 감각이 딱딱한 벽에 부딪히듯 낯설었다. 린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했다.

"그림자 안에 뭐가 있었어... 움직이지 않았는데, 그 안에 있었어."

엄마는 포크를 내려놓고, 그 말을 천천히 곱씹듯 눈빛이 달라졌다.

"그림자 안에... 뭐가 있었다고?"

린은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몰라. 그냥 있었어. 안 움직이면서. 그런데... 나를 피하는 것 같았어. 나를 보고 싶지 않은 것처럼."

아빠와 엄마가 시선을 교환했다. 그 눈빛 속에는 '아이들의 상상력'이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린의 진지한 표정에 두 사람 모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날 유치원에서는 빛과 그림자 수업이 있었다. 선생님이 빔 프로젝터로 벽에 빛을 비추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해가 드는 창가에서 손가락으로 토끼, 새, 오리를 만들며 아이들이 웃었다. 유치원 벽면은 다양한 동물 그림자들의 움직임으로 춤추고 있었다.

린은 조용히 구석에 서서 자신의 손을 들어 천천히 움직였다. 벽에 그림자가 생겼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그림자의 움직임이 미세하게 느렸다.

비밀을 발견한 듯한 떨림이 린의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0.5초쯤 늦게 따라오는 그림자. 그 시간차가 너무 작아서 다른 아이들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린에게는 그 어긋남이 절대적인 확신으로 다가왔다.

린은 그림자와 눈을 맞춰보려 했다. 그림자에게 눈이 있을 리 없었지만, 그 순간 린은 직감했다. 그림자가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것을. 그림자는 린을 보지 않고 있었다.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는 듯한, 분명한 '의도된 시선 회피'가 느껴졌다.

"린아, 네 그림자도 보여줄래?" 선생님의 목소리에 린은 고개를 들었다.

린은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림자가 벽에 드리워졌지만, 그것은 다른 아이들의 그림자와는 달랐다. 미세하게 움직임이 다르고, 그 윤곽이 너무나 선명했다. 마치 그림자가 린의 손이 아니라, 그림자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는 듯했다.

"와, 좋은 그림자구나!" 선생님이 말했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미세한 의문이 스쳤다.

저녁이 되자 집으로 돌아온 린은 하루 동안의 이상한 경험에 사로잡혀 있었다. 엄마는 이불을 덮어주며 린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오늘은 그림자가 안 움직였다고 했지? 무서웠어?"

린은 고개를 저었다. 창밖에서 비치는 가로등 빛이 천장에 옅은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아니. 그냥... 그 안에서 누가 나를 안 보고 있었어. 일부러."

엄마는 린의 말이 단순한 상상이 아님을 직감했다. 린의 목소리에는 어린아이의 단순한 상상이나 거짓말이 아닌, 이상하게 명확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가 널 알고 있는데, 안 봤다고 느꼈어?"

"응. 나를 알면서도... 안 봤어. 일부러. 그런데 엄마, 이상한 건..."

린은 말을 멈췄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어쩌면 린도 그 감각이 다른 세계에서 온 것임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상한 건 뭐야, 린?"

"그 그림자가... 나를 알고 있는 것 같아. 전부터. 아주 오래전부터."

엄마는 말없이 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린의 말에는 어린아이의 상상력을 넘어선, 알 수 없는 기억의 파편이 담겨 있었다.

아이가 잠든 후, 아빠는 커피잔을 손에 들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엄마가 와서 그 옆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그림자 이야기, 이상하지 않아?"

"어떤 부분이?" 아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린이 그림자가 자길 피했다고 했어. 그 안에 뭐가 있는데, 자길 안 봤대. 그리고 오늘... 그 그림자가 자기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고 했어."

아빠는 잠시 웃었지만, 이내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변했다. 그의 눈동자에 불안감이 스쳤다.

"요즘 아이들, 참 감수성이 풍부하네. 우리 어릴 땐 그런 생각 안 했는데."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에는 별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감수성만은 아닌 것 같아. 뭔가... 이상해. 말이 안 되는데, 말이 되는 것 같아. 마치 린이 우리가 모르는 뭔가를 볼 수 있는 것 같아."

침묵이 둘 사이를 감쌌다. 아빠는 한참을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냥 상상일 거야. 어릴 땐 그런 말 많이 하지. 나도 어릴 때 문 뒤에 괴물이 있다고 생각했었어."

하지만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알고 있는데, 안 봤어. 오래전부터.' 그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림자, 시간차, 누워 있는 것들... 그녀는 어쩌면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인식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도 모르게 린이 보는 세계의 일부를 희미하게나마 느끼고 있는 것처럼.

그 시간, 이불속에서 린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방 안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 속에서 그림자의 호흡이 들리는 듯했다. 미세하게 진동하는 공기, 그리고 누군가 지켜보는 듯한 느낌.

"그림자도 가끔은... 숨을 쉬는 것 같아."

린의 속삭임은 공기 속으로 흩어졌지만, 그 말은 린의 마음속 어딘가에서 천천히 공명하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기억이 깨어나려는 듯이.

린은 천천히 손을 뻗어 벽에 드리운 그림자를 향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 순간, 린은 확신했다. 그림자가 살짝 물러섰다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린에게는 분명했다.

"난 널 알아. 넌 나를 알지? 그렇지?"

침묵만이 대답했지만, 그 침묵 속에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인정? 회피? 혹은 더 깊은 무언가?

린은 잠들었다.

그림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움직이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자세로. 마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만남을 기다리듯이.

무차원의 카오스에서 온 기억의 파편들이, 린의 의식 깊숙한 곳에서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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