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1주택자 되기(계약편)

매도인과 매수인의 관계, 그 묘한 긴장감

by 유연한샤프심


결혼 3년 차, 첫 집을 샀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집을 샀고, 축하할 일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머릿속은 복잡하고 아직도 이게 맞나 싶은 생각도 든다. 게다가 꽤 다채로운 시도 끝에 겨우.. 계약을 하게 된 터라 집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모든 게 처음이라 집을 보고 계약하는 과정에서 실수도 많았고, 앞으로 인테리어도 해야 해서 인테리어 견적과 시공상담, 진행과정도 조금씩 풀어나갈 예정이다. 나조차 어디서부터 해나가야 할지 막막하니, 이렇게 써놓은 시행착오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러분, 이체 한도는 미리! 늘려 놓읍시다.


우리 부부, 매도인 부부, 양쪽 부동산이 모여 계약서를 쓰는 날이었다.

계약 전부터 말이 많았던 거래여서 나는 오늘을 기점으로 더 이상 이들과 연락을 하고 싶지 않았다.

빨리 거래를 하고, 맘 편하게 내집마련의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쉽게 풀릴 리가 없다.

계약서를 다 작성하고 이제 계약금을 이체하기만 하면 됐는데..


계약 전날 남편이 분명 한도를 늘려놓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체하려는 순간, 이체 한도를 안 늘렸다는 것을 알게 됐고.. 우리는 돈을 줄 수 없었다.

나는 옆에서 남편의 휴대폰 화면을 보고 있었기에 알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직 몰랐고, 남편은 멘탈이 나갔는지 말을 꺼내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화가 났다. 저 사람들한테 책잡히기도 싫었고, 이런 기본적인 실수를 하는 남편에게 화가 났지만 내 기분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계약금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나도 머릿속이 하얘졌다.


결국 남편은 사실대로 말했고, 부동산 사장님은 처음이라 그렇다, 이런 일이 왕왕 있다며 다독여주셨다.

그래서 보통 이런 중요한 계약은 은행 업무가 가능한 오전에 한다고 한다. 우린 퇴근 후 평일 저녁에 모인 것..

아무튼 부동산 사장님이 매도인 부부에게 상황을 봤으니 내일 한도를 늘리고 나머지 금액을 이체해 주는 게 어떻겠냐라고 물어보셨다. 아, 참고로 우린 계약금의 60% 정도는 이미 지불한 상태였다.(계약서 작성 전 지급, 당일 현금으로 지급, 나머지를 이체하면 되는 상황)


"아니요, 그건 아니죠. 오늘이 계약하기로 한 날인데 오늘 무조건 주셔야죠. 빌려서든 뭐 어떻게 해서라도 오늘 주세요."라고 매도인 여자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맞는 말이다.'였다. 그리고 '아, 나도 나중에 저렇게 해야 하나, 뭔가 프로페셔널(?)한 느낌이네.'라고까지 생각했다.

오늘이 계약날인 것도 맞고, 그 사람들도 시간을 내서 온 거고 실수는 우리 쪽에서 한 것이니.. 제안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땀을 흘리며 죄송하다고 하는 남편을 보니 굳이 저렇게까지 말해야 하나 라는 생각은 들었다. 그렇게 늦은 저녁,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몇 천인데 누가 그렇게 현금을 가지고 있으며.. 그걸 선뜻 빌려주겠는가.

조금씩 길어지는 시간에 매도인 여자는 "사장님 가지고 계신 현금 없으세요? 그거라도 먼저 주세요"라는 식으로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거의 삥 뜯는 수준이었지만, 그 당시엔 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하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사장님만 바라봤다. 심지어 그분은 매도인 쪽 부동산 사장님이었다.


그렇게 다행히 가족들과 부동산 사장님이 가지고 계신 돈을 합쳐서 매도인에게 이체해 줬다.

돈을 받고 여자는 인사도 없이 홀랑 나가버렸고, 남편은 눈치를 보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갔다.

나와 남편도 인사를 하고, 그들이 나가고 나서야 풀썩 앉아서 숨을 셨다. 하.. 기가 쭈욱 빨렸다.


둘 다 멘탈이 털린 채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매도인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봤다. 뭐가 그렇게 급했을까..

다음날 남편은 은행에서 바로 이체한도를 5억으로 늘렸고..ㅋㅋㅋㅋㅋㅋㅋㅋ

드디어 계약금을 우리의 돈으로 넣게됐다. 아직도 중도금과 잔금이 남았다. 집에 발을 들이기까지 나는 집을 샀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오죽하면 계약한 날 밤, 꿈에 매도인이 요상한 조건을 걸고 집을 안주는 꿈을 꿨다. 아 열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