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려서 샀습니다.
집을 사기로 결심하고, 부동산을 돌며 계약을 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약 한 달.
나는 대구에서 올라왔고, 서울에 살면서 내집마련이라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 못 해본 거겠지. 언젠간 사겠지 하면서 못 사도 그만이라는 포기 반 무관심 반의 상태랄까?
(30대엔 멋진 어른이 되어있을 거야.. 같은, 현실은 엄마 밥 줘)
30대 중반을 향해 가다 보니 직장, 친구 할 것 없이 주변에 부동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한둘씩 늘기 시작했다. 주식에 관심을 가지고 코 묻은 돈을 이리저리 굴리기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부동산에도 어디 한 번 관심을 가져볼까 하던 찰나 터져버린 6.27 대출규제. 그리고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는 많은 규제들.
재미로 봐야지 해서 본 부동산 앱들은 나에게 모욕감을 줬다..
서울 집값은, 일단 도심쪽은 앞으로도 쉽사리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집값은 안 떨어지는데 대출도 쪼여?
불과 우리보다 한 달 전에 집을 산 친구가 7억을 대출을 받았고, 이제는 이자를 내겠다 해도 7억을 빌리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출규제가 체감됐다. 일단! 현재 전세금도 있고, 주식으로 코 묻은 돈이 조금 불어난 김에 집을 알아나 보자. 그렇게 나와 남편은 빠르게 집을 찾기 시작했다. 어차피 무주택자고, 실거주를 할 생각이라 '안정감' 말고는 큰 가치나 기대를 두지 않기로 했다. 정신승리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부동산 시장에서 돈만큼 정직한 것은 없다
당연한 소리다.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층, 동의 위치, 방향에 따라 집 값이 천차만별이다.
아, 대출이 1-2억만 더 나왔으면 우리가 좀 더 원하는 집으로 갈 수 있었는데.. 뭐 이런 쓸모없는 생각을 하며 집을 보러 다녔던 것 같다.
오, 이 아파트가 왜 저렴하지? 하고 가보면 (비교적) 저렴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나는 고지대가 싫다. 나의 작고 소듕한 기후동행카드로는 저 산을 오를 수가 없다.
남편은 자차를 이용하니 내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알아봤다. 괜찮은 매물들은 빠르게 나갔고, 특히 20평대는 정말 없었다. 20평대 매물은 정말 귀하다. 30평대는 꽤 있었다. 30평대를 샀으면(못삼) 확장 같은 고민은 없었겠지만 아무래도 그만큼 부담도 커지고, 우리에겐 의미 없이 넓은 것도 사실이다.
여러 집을 보고, 머리 싸매고 고민해 봤지만 나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당연히 모든 조건이 내 맘에 쏙 들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꼭 내집마련을 굳이 지금 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뭐 부동산 정책이야 언제 또 바뀔지 모르는 거고, 꼭 매매를 해야 할까.. 전세든 월세든 어디든 들어가 살면 되는 것 아니냐..라는 생각들이 스쳤다. 자취를 하며 이사하는 생활에 익숙해져서일까. 그러나 내가 애매하게 굴 때마다 남편은 대출규제 관련 뉴스를 보여주며 협박.. 같은 회유를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우리의 조건은?
앞서 말했듯이 나는 언덕이 싫다. 고지대에 있는 아파트.
작은 서울 땅에 건물들을 욱여넣어서 어쩔 수 없이 가파르고, 파인 지형들이 있다.
땅값이 비싸든 싸든 상관없이 지대가 평탄한 곳이 잘 없다. 지하철도 내핵까지 판 수준인데, 지금은 집도 꽤 높은 위치에 있다. 뭐 물론 덕분에 공기가 좋고, 경치가 좋고.. 어쩌구..
날씨가 좋은 날엔 운동한다는 생각으로 오르내리겠는데 날씨가 춥거나 덥기라도 하면 성격이 이상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릎이 아프다.. 하드웨어는 튼튼해 보이나 내구성이 안 좋은 나의 다리는 내리막이 싫다.
그래서 되도록 평탄한 지대에 있는 완만한 언덕? 의 아파트를 찾았다.
남편은 주차난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지금 2천 세대가 넘는 대단지에 살면서 지하주차장에서 차가 나오는 걸 못 봤다. 아마 자동차 정비소가 아닐까..? 그 정도로 쓸모가 없다는 얘기다.. 이중주차는 기본이다. 기어를 N단으로 해놔도 가끔 새벽부터 차를 빼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눈이 오면 고스란히 눈으로 뒤덮이는 차. 치우는 것도 일이지만 일단 얼어서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차의 연식과는 상관없이..
그래서 지하주차장이 좀 넓고, 주차고민이 덜한 단지를 찾았다.
아무튼 이 두 가지 조건을 그래도 충족시키는 곳을 찾아 헤매..ㄹ 필요도 없었다.
선택지가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산다 안 산다의 옵션이 있었지, 뭘 사야 할지의 옵션은 많지 않았다.
우리 예산에 맞는 매물이 없기도 했고, 그냥 매물 자체가 많이 없었다.
어쨌든, 뜻이 맞았던 결론
약 한 달간의 기간동안 매매에 대한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지만 결국 저질렀다. 계약은 이미 해버렸다.
평소에 내가 제태크에 더 관심이 많고, 실행력이 좋은 것에 비해 남편은 그렇진 않았는데 집 매매에 관해서는 나보다 적극적이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물론, 남편도 이게 뭐 옳은 선택이다라는 100%의 확신은 없었다.
그래도 우리한테 (빚과)집이 생긴다는 사실은 확실한거니까..나도 결심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일단 시장을 관망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생겼고, 내가 원했던 것들을 시도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