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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야옹 Jun 20. 2019

귀엽지 않은 고양이들

길고양이 호스피스쉼터 '경묘당' 에서

“귀여우니까요.”

경묘당 '몬돌이'

우문현답이었다. 고양이에 관한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다. 고양이 전문 수의사 선생님을 인터뷰 차 찾아뵀다. “인간을 사로잡은 고양이만의 매력은 무엇일까요?”라는 내 질문에, 선생님은 답했다. 1인 가구의 증가, 개인주의의 확산, 그럴듯한 이론들은 차치하고서, 그저 귀여워서라고. 옳다! 고양이는 귀엽다. 나 또한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귀여움에 굴복해버렸다. 그래서 무더운 날에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제 덩치만한 장비를 지고 고생을 자처했다.

경묘당 '까미'

경묘당의 고양이들은 귀엽지 않다. 적어도 세간에 유행하는 콘텐츠 속 고양이들 모습을 기준으로 삼으면. ‘귀여움’과는 거리가 멀다. 심한 구내염을 앓는 고양이들은 벌어진 입 사이로 침이 흘러 바닥까지 닿는다. 다가가면 악취가 코를 찌른다.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한 녀석의 공허한 두 눈에선 파릇한 생의 기운 대신 고양이귀신의 망령 같은 게 비친다. 예상보다 참담했다. 잠시 고양이들보다 내 걱정이 앞섰다. 나, 괜찮을까.

경묘당 '록키'

난 연민과 슬픔 같은 감정과 마주하는 데 능숙치 못하다. 무섭거나 폭력적인 영화는 곧잘 보면서 슬픈 영화는 거른다. 슬픔을 유발하는 상황과는 일찌감치 거리를 두며 살아왔다. 눈을 감고, 귀를 닫고. 그런 내가 병든 생명의 신음소리로 가득한 곳에서 봉사라니. 첫날 집에 돌아가 고양이들 사진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눈물을 훔치며 생각했다. 관두자, 그냥.

경묘당 '삼색이'

그러지 못했다. 첫날의 충격은 점차 가셨다. 고양이들을 떠올려도 눈물샘은 이성을 잃지 않았다. 언젠가 류시화 시인의 수필집에서 읽은 구절을 기억해냈다. 내가 오늘 한 행동이 누군가에겐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맘에 담은 세상의 모습일 수 있다고. 그 누군가가 사람에만 한정되진 않을 테다. 다짐했다. 깨끗한 물 한 모금 구하기 힘든 길바닥에서 구조돼 묘생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녀석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열심히 해보자고.

경묘당 '뭉실이'

지금의 나는 고양이들에게 어째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더 많다. 일종의 호스피스 병동이라 해서 경묘당이 울적한 공간일 거란 생각은 오판이었다. 아프지만 씩씩하고 재간 넘치는 녀석들 덕에 웃음이 넘친다. 또 나는 이곳에서 생로병사에 대한 차분한 성찰의 기회를, 삶의 용기를 얻어간다. 두려워 뒷걸음질 치기만 했던 아픔, 노화, 죽음 앞에 담담히 직립하는 법을, 이토록 작은 생명들로부터 배우고 있다. 장담컨대 경묘당은 100세 시대를 대비하는 현대인에게 꽤나 멋진 평생교육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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