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하루는 강아지와의 산책으로 시작된다. 산책을 위해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은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 집에 돌아와서 강아지의 네 발바닥을 물티슈로 살뜰히 닦는 것으로 산책은 마무리된다. 산책을 시켜줬다고 해서 죄책감이 완전히 덜어지는 건 아니다. 강아지의 애절한 눈망울이 눈에 밟혀 현관에 서서 자꾸만 뒤돌아본다. 간식을 주고 나서도 한참 먹는 모습을 지켜보다 지각을 면할 시간에 간신히 집을 나선다.
남자의 하루는 강아지를 양치시키고 빗질하는 걸로 마무리 된다. 남자가 칫솔과 빗을 집어든다는 건 이제 그만 놀이를 끝내고 자야한다는 뜻이다. 주인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듯 애교를 피우던 강아지는 칫솔과 빗을 보자 갑자기 벽을 보고 고개를 떨구며 모른척 한다. 그런 강아지가 안쓰럽고 귀여워 남자는 십여분 더 장난감을 흔들어준다. 겨우 잠들고 나서도, 남자가 뒤척이면 강아지가 깨고 강아지가 뒤척이면 남자가 깨고 그렇게 서로의 단잠을 방해한다. 저럴 꺼면 따로 자지... 싶다. 속이 불편한 강아지가 새벽에 눈을 떠 토하는 소리에 남자는 알람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잠이 깬다. 그럼에도 강아지를 탓하지 않고 애틋하게 쓰다듬어준다. 결국 다시 잠들지 못한 채 알람 소리를 듣는다.
이 고생을 마다하며 사람은 왜 동물과 함께 사는가. 저렇게 마음을 주다가 필연적으로 사람보다 일찍 죽는 동물은 또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참 알 수 없는 동물이다. 귀찮음도, 슬픔도 이겨낼 수 있지만 외로움은 이겨낼 수 없는 동물이인간이다. 외로움이 극에 달하면 존재에 위협이 되기도 한다는 듯이. ‘외로워 죽겠다’는 말이 과장만은 아닌가 보다.
남자와 대형견의 영상을 본 사람들은 ‘너무 귀엽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강아지가 안쓰럽다’ 등 댓글을 달았다. 사람보다 귀여운 강아지에게 눈길이 가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왠지 사람이 더 짠하게 느껴진다. 털도 없고,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도 없고, 마음도 여려빠진 인간... 강아지와 고양이는 인간을 지켜주기 위해 지구로 파견된 용병들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