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에서조차 솔직하지 못한 내가, 처음으로 관객을 생각지 않은 글을 썼다
나는
기억나지 않는 어릴 적부터
문학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짝사랑만 25년째.
문학 속의 그 허구의 세-계-가, 내 세상 안에서 피어나 무지개처럼 겹쳐보이고
이 지구 어디선가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작품 속 안의 인물이, 가끔 내 옆에 앉아있기도 하고
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낯설고 반짝이는 표현들이,
머릿속에 아리게 박히고 내 안에 계속 쌓이면서 또 하나의 세상이 되는 것이 좋았다.
꿈을 꾸기 시작했던 게 열 넷인가, 열다섯인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부터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 길을 갔다.
대학 때부터 손가락으로 세도 20년을 바쳤다.
전공도 문예창작이었고, 글 쓰는 직업도 가졌었다.
글 쓰는 동아리, 동호회, 스터디... 셀 수 없었다
버스를 타야 집에 갈 수 있어서 밥을 굶어야 하는 계절이 그치지 않자, 현실에 타협한다는 이유로 글을 완전히 버리고 취업도 했었다. 하지만 겨우 월세 보증금을 모으고, 월세를 감당하면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돈을 아끼지 않고도 버스를 탈 수 있게 있게 되면서 겨우 생존에게 위협을 받지 않게 되자 글 쓰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마음을 뒤덮었다.
결국 글이 나를 놔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퇴사하고 전혀 다른 직업도 가졌다.
일주일에 한 번은 드라마를 쓰기 위한 수업을 듣고, 대본 스터디를 했다.
그것만도 10년이었다.
내 꿈은 계속 나이를 먹어가는데 하나도 자라지 않는 것 같았다.
성장통은 겪을 만큼 겪은 거 같은데 아직도 멀었는지. 이 나이가 되도록 정말 먼 건지.
아니면 삶이 몇 번이나 글 쓰는 건 아니라고, 너의 상상은 그저 상상으로 끝인 거라고 몇 번이고 말했는데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멍청하게 매달리고 있는 건지. 그런 것만 같았다.
정말, 서사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나 서사를 사랑했지만,
서사에게 사랑 받은 적은 없었다.
브런치는 그런 나에게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며 다가왔다.
아주 개인적인, 당신의 오리지널 스토리를 원한다고.
서사에게는 사랑받지 못했던 나에게
내 '서사'를 들려달라고 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나'라는 이야기가 '있다'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떤 대본 앞에서도 재밌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진부하고도 비루한 이야기였다.
그래도 브런치는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브런치에게 '작가'라는 명칭을 직위처럼 부여받은 후,
오래 망설였다. 내 이야기라니. 차라리 '시'를 쓰라면 쓰겠는데(찰나의 순간순간을 쪼개서 그걸 '시'로 써 본 적은 있다. 언어화되어있지 않은 감정을 구체화시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나의 서사를 써도 되는지 몰랐다. 진부해서 지질하고, 흔하디 흔해서 안 봐도 다 알 것 같은 그런 이야기를 누가 보고 싶어 할까.
브런치는 내 얘기를 들려달라고 했지만 이에 나는 회의적이었다.
작당하고 몇 년에 걸쳐 만든 근사한 허구에도 지적하는 날카로운 말 밖에 못 들었던 과거들이 이명처럼 다가와 맥놀이를 일으키며 절망감을 쌓고 갔다.
작가 선정을 5만 명 이상 해온 이들이 백 퍼센트의 진심으로 내게 얘기한 건 아닐 터였다. 단정하게 쓰인,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그 글자들은 감동적이고 진심을 담은 말들일테지만 내게만 건네지는 게 아닐 것인 줄은 당연히 알았다.
너무 많이 받아봤던 아주 정중하고 깔끔한 거절의 말처럼. 그런데도 그런 류의 말을 들어 본 것조차도 너무 오랜만이라, 차마 등 돌려지지가 않았다.
그들이 내 글을 읽을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허나 너무나 오랜만에 들은,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말이 뭉클하게 고마워서 답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을 뿐. 그 말을 건네준 브런치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써보자 싶었다.
다만, 읽히지 않을 재미없을 얘기라면, 아무것도 검열 않고 그대로라도 써 보고 싶었다.
노골적이고 징그럽게. 몇 년째 슬럼프를 겪느라 오랜시간 공들여 다듬는 근사한 허구는 못 써도 진흙탕 밑바닥의 원형에 가까운, 아주 원초적인 감정이라면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했지만 며칠 째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학점도, 점수도, 장학금도, 진급도, 상금도, 심사위원도, 그 어떤 제약도 없는 백지는 철저히 길을 잃기 쉬웠다. 무엇이든 해도 되는 공간은, 오히려 옴짝달싹 못하게도 했다.
며칠을 한 글자도 못 쓰다 문예창작과 지망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쓰는 직접 만든 교본을 폈다.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처럼, '낯설게 하기 기법'이나 '문장연습'을 하다가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심정으로 막 써보기로 하고 초고를 썼다 그런데 글을 쓸 때 늘 같이 있었던 검열관이 자꾸 나를 찔러댔다. 나도 모르게 버릇처럼 표현을 순화시키고 인위적으로 밝게 몇 번이나 퇴고를 하고 있는 걸 깨닫고 처음으로 원래의 표현들을 다 돌려 초고에 가깝게 다시 고쳐 썼다. 검열하면서도 고치지 않은 표현이 맞는지 몇 번이고 검열했다. 더 이상 검열한 흔적이 없어지자 '발행'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나'라는 작가가 되었다.
브런치에 처음 글을 업로드했을 때,
나는 내 주변에서 초조하게 서성이던 우울이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소리 내어 울 줄 모르는 내 옆에서 고독이 오열했다.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고,
독자를 인식하며 타협도 하지 않고, 써낸
'나'라는 수필.
나는 처음으로 그렇게 바라던, '문학'이 되었다
나는,
정말,
처음으로,
그렇게 바라던,
'문학'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