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장은 왜 이렇게 문학적이지 못할까, 하며 고민하고 있는 그대들에게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부터
많은 사람들의 에세이를 읽으며 위로받고, 또 위로받았다.
나는 문학이 꿈이었던 게 너무 오래돼서 그런가,
있는 그대로의, 그 정돈되지 않은 날 것의 느낌이 정말 좋아서
그런 글을 만나면 한 없이 읽어보고 읽어봤다.
그런데 아주 많은 분들이,
문학적으로 쓸 수는 없을까, 고민하고 계셨다.
평생을 이해받지 못하고 살아왔고, 그렇게 산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들이 '진부해서' 부족하다는 그 단어, 그 문장에
나는 오히려 많은 위로를 받았는데,
같은 이유로 쓰는 사람은 쓰면서도 고통이라 했다.
분명 당신의 이야기는
이렇게 마음 안에 왔는데.
하지만 그건
그건 그냥 내 감정이고, 내 취향이다.
내게 마음이 든다고 해서
글쓴이에게도 그런 건 아니겠지.
꿈을 가지고 나서부터 보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어서
보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장 앞에 두겠다고 한 나와는 달리
보는 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수 없는 사람도 있겠지.
문학을 전공하고, 소설을 쓰고
문학을 가르치고, 드라마를 쓰고.
문예창작 예고, 예대 입시도 십 수년째.
논술을 가르쳐서 대학 보낸 아이가 몇이며,
문학 때문에 4등급 나오는 이과 바보들을 가르쳐 국어를 1등급으로 만들어준 것도 오래됐다.
물론 쓰는 것과 읽는 것은 다르지만,
나는 너무 오래 문학과 스스럼없이 같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혀 객관적이지 못한 내 상황에
누군가에게 물어보려고 해도 일에 관련된 이들과,
드라마 공부하며 스터디하던 글벗들.
글 쓰는데서 만난 글이 당연한 사람이거나,
글과 상관없는데서 만난 글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그냥 지나치려 하는데
어떤 에세이가 나를 잡았다.
나는 문학적일 순 없을까,
더 잘 쓸 수는 없을까.
난 왜 문학적으로 글이 안 써질까
왜 난 글을 잘 못 쓸까.
왜 가득한 마음만큼 안 써지는 걸까.
.
.
.
.
문예창작학과를 지망해
입시실기를 배우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선생님, 어떻게 해야 문학적일 수 있어요?
저는 더 잘 쓸 수는 없나요?
저는 왜 예쁘고 빛나게 글이 안 써질까요?
왜 제 글은 이 모양이죠? 왜 못쓰는 걸까요...
왜 안 써지는 걸까요. 써야 하는데........
몸은 열아홉, 마음은 아홉 살인 고등학생들처럼
그분들의 마음에도 열아홉 살의 문예창작과 지망생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금세 머릿속에 교복 입고 원고지와 연필을 든 학생들이
까르르까르르 으컁컁 으컁컁
팔랑거리는 바람과 같이 가득 지나간다.
문예창작과 수시 실기를 접수하곤,
세상 진지한 얼굴로 실전 연습을 하는,
아주 심각한 아이 앞에서
까르르까르르 으컁컁 으컁컁
상상하며 피식 피식이라니.
저가 쓰고 있는 걸 보면서 웃고 있었더니,
저를 보면서 웃는 줄 알았나 보다.
열심히 쓰고 있는 아이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그 아이가 써 내려가는 한 단어에, 한 문장에
실기를 가르치면서 그 아이가 만들어 냈던 결과물이 비쳤다.
하지만 그 결과물보다 예쁜 건,
역시 쓰는 그 아이의 윤슬 같은 눈동자다.
쓰는 동안의 그대의 눈동자 역시
윤슬처럼 빛났었을 것임을 보지 않아도 안다.
그것만으로도 그대는 충분히
내게는 문학으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