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목별로 진행하는 화상 회의가 있었다.
전체 일정 중 일부를 공유하고, 각 팀이 논의한 내용을 정리해서 발표하는 자리였다.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연차가 조금 있다는 이유로 내가 진행을 맡게 됐고, 자연스럽게 서기도 내가 했다.
예전의 나라면 아마 이 회의에서 의견을 많이 냈을 것이다.
말을 끊고 들어가지는 않더라도, 생각나는 게 있으면 바로 이야기했고, 다른 사람 말에 덧붙여서 내 해석을 얹거나, 조금 더 과장해서 설명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기왕 쓰는 시간, 생산적으로 썼으면 했고 유익한 결과가 나왔으면 했다. 회의라는 형식을 빌려, 내가 가진 에너지를 쓰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나는 거의 내 의견을 내지 않았다. 대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겹치는 부분을 묶고, 빠진 맥락을 채우고, 표현을 조금씩 다듬어 적었다. 누군가 말이 길어지면 요약했고, 의견이 엇갈리면 중간 지점을 찾아 문장으로 정리했다. 진행과 기록을 동시에 하다 보니, 발표까지 하기엔 조금 버거워서 마지막엔 게 중에 무리 없이 할 만한 한 명을 지정해 발표를 하라고 주문했다.
“정리한 건 여기까지입니다. 발표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간략하게 얘기만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발표는 지정한 이가 시킨 대로 그대로 했고, 나는 화면 밖에서 고개만 끄덕였다.
회의가 끝난 뒤, 다른 팀 결과와 비교했을 때 우리 쪽 자료가 제일 정리가 잘 되어 있다는 말이 나왔다. 발표에 대한 반응도 좋았고, 질문도 적당히 나왔다. 누군가는 농담처럼 말했다.
“역시 짬밥은 무시를 못하네요.”
“진행 진짜 깔끔했어요.”
“는개 수석 같은 사람만 있으면 걱정이 하나도 없어요!"
"정말 안정적인 사람 같다.”
나는 그냥 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걸 ‘철들었다’고 불렀다.
집에 돌아와서 복기해 보았다
사실 나는 그날 회의에서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의견을 주장한 기억도 없고, 내 감정을 실은 문장을 쓴 적도 없었다.
그저 이미 나온 말들을 정리하고, 적당히 매끄럽게 이어 붙였을 뿐이다.
누군가의 생각을 대신 말해주는 역할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 모습이 더 성숙해 보였고,
더 편해 보였고,
더 사회적인 사람처럼 보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말을 많이 해서 존재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말을 하지 않아도 역할이 생긴다.
이게 정말 철이 든 걸까.
아니면, 말할 필요가 없어졌을 뿐일까.
...... 혹은 말하고 싶은 게 줄어든 걸까.
사람들은 나를 보며 “편하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이 좋으면서도, 어딘가 정확하지 않다고 느낀다.
편해졌다는 건,
내가 편해졌다는 건지,
아니면 내가 더 이상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는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