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우울증을 앓는 ENFP 환자의 우아한 하루일과
기상시간이 되어 설정된 알람이 울린다.
알람소리가 최소 두 번은 반복되는 동안 손이 휴대전화를 향해 간다. 힘없고 느릿한 손은 이윽고 휴대폰으로 다가가 알람을 종료한다.
한참을 누워있다가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나는 그제야 귀마개를 빼고 침대를 벗어난다
커피를 앞에 두고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이것저것 눌러본다. 컴퓨터 화면은 요란히 바뀌지만 흥미가 가질 않는다.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회사 ERP에 접속해서 필요한 업무를 하고 커피를 마신다. 예가체프라는데 어떤 향도 어떤 맛도 안 느껴진다. 그저 그냥 그러려니 한다.
식사 시간이 되었다. 옆에 있던 사람에게 이끌려 식사하러 식당에 간다. 옆에서 어떤저떤 말소리들이 들리지만 내 앞에서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들린다. 얘기하던 사람들끼리 불쑥불쑥 날 돌아본다. 내게서 무슨 말을 바라는지는 모른다. 그러다 눈이 맞으면 빙그레 웃는다.
식사를 마친 나는 계산대에서 주인에게서 카드를 받으며 잘 먹었습니다,라고 중얼거리듯 대답하고 가게를 나선다.
세팅된 마이크와 조명 앞에서 이윽고 수업이 시작된다. 눈앞에 있는 학생의 눈은 피곤에 지쳐있다. 나는 그 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된다. 자연인인 나는 중증의 우울증 환자지만, 강사인 나는 그 피곤에 절어있는 아이들이 내 수업 중에 무조건 한 번은, 어떻게든 한 번은 웃기를 바란다. 그래서 웃게 만드는 걸 목표로 하는 강사다.
내가 우울할수록 일부러 목소리 톤을 높인다. 연극배우처럼 과장된 액션으로 연기한다.
오늘 수업은 판소리 사설 <춘향가>다. 배우가 되어 대사를 읽어주면 아이들은 구연동화하는 선생님을 보는 유치원생 같은 얼굴이 된다. 대본 읽는 걸 마지고 설명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갭이 너무 큰 거 아니냐며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댄다. 아이들은 그렇게 한 번은 웃었다. 오늘의 나의 가치는 한 건지도 모른다. 그랬으니 됐다. 오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