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에 있던 나의 삶 속 궤도의 한 단면
시리얼을 먹다가 치아가 깨졌어요.
튀어나온 치아조각이 절반의 절반의 절반도 되지 않는 작은 조각이었는데, 그걸 보는 제 마음이 너무 묘했습니다.
치아의 상아색은 이미 색을 잃은 지 오래되었더라고요.
원래 치아는 껍데기만 겨우 남아있었어요.
그 얇은 껍데기에 가득 찬 아말감 결석.
짙은 회색 빛을 띈 치아는 껍데기처럼 내장 충전재를 포장하고 있는 것만 같더라고요.
치료한 흔적이 너무 많더라고요. 너덜너덜해 있었어요.
원래의 내 치아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어요.
하얀색의 석고와, 아말감에 물들어 색깔이 물들 대로 물든 그 끝에,
최선을 다해 버티고 버티고 버티다 시리얼에게,
고작 시리얼에게 자신을 내어주었어요.
버티고 버티고 버티다가 못 버티고
겨우 우유에 살짝 젖은 시리얼에 결국은 부러져 버린 그 치아 조각.
고작 시리얼이라는 충격에 자신의 많은 부분을 내어준 어금니.
그렇다고 여기기에는
뭐랄까... 묘한 기분이었어요.
이 나간 그릇 파편 같기도,
산산조각 난 유리같기도,
너울의 작은 포말 같기도.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내 감정이 대부분 눌려있어서 아주 이성적으로 보이는 지금.
우울이도 없고 무기력도 없는 이 지금.
왜곡이나 부풀림 없이 세상이 무기질적인 이 지금
그대로의 크기를, 모양을, 색깔을, 질감을, 향을.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였나봐요
깨져 필요 없어진 치아를 버리지 못하겠는 이유는.
몇 날 며칠을 틈이 날 때마다 들여다봤습니다.
그저 그 감정의 정체를 규정하고 싶었을 뿐인데
갑자기 가여워 보이더라고요.
석고나 아말감 같은 싸디 싼 재료로 채워지고도 잔뜩 닳아있는 모습이 20대의 나 같았어요.
하루 채 네 시간을 자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그렇게 병행하면서
시간에 쫓겨 삼각김밥을 그렇게 빠르게 씹어야 했던 그 치아가.
안타깝더라고요.
슬프지 않은데도 가여워 보이는 건 처음이었어요.
이 치아가 여태까지 매달려 힘냈을 걸 생각하니까.
쓰다가 이제는 필요 없어져 버려질 애가 아니라
이 악물고 억지로 버티고 버티다 결국 쓰러진 그런 애 같아서.
치아깨진 자리는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서 응급조치라도 해야하는데
못 가겠더라고요.
있었던 자리를 없애는 게 불쌍해서.
그 파편이
나처럼 보이는 그 환영이
계속 겹쳐져 보이는 우울 삽화가
못 가게 발목을 잡더라고요.
이 치아무늬 깨진 안쪽 치아 안의 생김새를 보지 않았어요.
그 20대의 나 같은 기분을 털어버리려고요.
무언가로 자꾸 덧대져 보이는 그것이
그저 깨진 치아조각으로
사물로 온전히 보일 때까지.
이미 부러졌으니 그 난 자리는 시릴지도 몰라요.
그래도 지켜보려고요.
그 치아 조각이 나를 얼마나 이루고 있었는가를.
그 조각이 버티고 있어줘서
일 하고, 글쓰고, 책 보고, 잠 자고
우울해하고, 괴로워하고, 울기도 했을텐데
빈 자리가 어디까지인지 느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