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기 위해 일단 싫어하진 않기로 했다

나를 사랑하려 노력하는 게 아니라, 나를 싫어하지 않는 것부터였던 거다

by 는개




'오조준'을 아세요?


양궁에서는 활을 쏠 때 흐리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오조준'을 해야 된대요.

바람이 부는 방향을 계산해서 과녁 밖으로 조준해야 명중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기억을 하는 한에서 제 삶에는 흐린 날이 월등하게 많았어요. 바람 부는 날도 많았고.

그래서 나를 사랑하라고 하는 말들은 명중은 커녕 과녁 가까이에 가지도 못했나봐요.

마음에 가기위해 오조준을 했어야 하는데 정조준을 해서

여기저기서 읽고 따라 해 봤던 타인이 말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들이 저에게는 맞지 않았던 거죠.


게다가 거리도 있어요.

과녁에 화살을 쏘아도 가시거리가 있잖아요?

제가 화살을 쏘는 방향뿐만 아니라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조차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쏘기만 했던 거예요. 가뜩이나 나를 사랑하는 힘이 없어서 활도 화살도 튼튼하지 않은데 쏘기만 하니, 총체적 난국이었던 거죠.







"선생님, 저는 나아지고 있는 걸까요? 점점 뭐든지에서 용기가 없어져가고 있는데…"


재치료 시작 전에도, 그 이후에도

내가 정말 나아지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선생님께 여러 번 물었어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단 것만으로도 나아지고 있는 것 아닐까요? "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저를 위해 일부러 해주시는 칭찬 같아 제게 왔다가도 대부분 휘발되어 저도 모르게 없어져버리고 말던 선생님의 말이 남았어요.










그 말을 움켜쥐고 나의 아늑한 저지대에 앉아 몸을 웅크리고 있으니 그 말이 다른 방향으로 보이더라고요.

불안이 덜어지면서 저는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나는 나를 이렇게 싫어하는데

날 극진히 대접하고 사랑하라고 하니까 아귀가 들어맞을 수가 없었다는 것을.


내가 나를 생각하는 감정이 '자기혐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혐오와 사랑이 동시에 같이 있을 수 있을까.


[애증]까지는 들어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혐오와 사랑이 같이 있는 뜻의 단어는 제가 아는 선에서는 없어요. 언어란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담고 있거든요. 언어화되어있지 않은 감정이란 보편성을 가진 감정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날 이후 조금씩 저의 싫은 부분들 중 그나마 싫음이 덜한 파편 같은 싫은 부분을 찾고,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노트를 꺼내 티끌이나 병아리 눈물만큼 이라도 덜 싫은 것들을 적기 시작했어요. 가장 혐오하는 부분부터 버리려고요.


적는 게 쉽진 않았어요.

내 마음 한쪽을 너무 오래 차지하고 있는 '살아가는 게 나를 죄인으로 만드네'* 라는 멜로디가 가사가 타고 손을 너무 많이 찔렀거든요. 헤집어진 마음에 과거의 감정이 솟아올라 할퀴어지기 시작했어요.


적으며 보다 보니 사랑얘기도 적히더라고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조차도 날 사랑하지 않아 많은 부분에서 잘못된 선택을 한 흔적이 많았어요.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내 마음이 잘못 표현되니 타인의 진심을 왜곡해서 보거나 그릇되게 해석하거나 아집이나 고집의 색깔도 묻어있더라고요.


적어가는 연필 심이 뭉툭해지길 몇 번을 반복하면서 전혀 다른 성격의, 전혀 다른 곳에서 만난 이전 연인들과, 짝사랑 상대들에게도. 오랫동안 공통적으로 했던 생각이 흘러나오더라고요. '나 같은 사랑이라면... 하지 마요'* 라는 멜로디의 가사였어요. 너무 고통스럽고 버거운 나날이 계속되어서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이런 아픔 느끼지 말라고. 많이 바랬었는데. 무의식적으로 나도 알고 있었나 봐요. 그때마다 느끼고 있었나 봐요.

뭐가 더 싫은지 경중을 따져보려니 할퀴어진 마음이 아파서 연필을 내려놨어요.


정량의 약으로도 우울이가 이기니,

좀 쉬었다가, 해 볼게요.









* 루시드 폴 3집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2007

* 정재형 1집 <나 같은 사랑이라면>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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