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대로 사랑받았다는 증거를 찾아요

그게 아니라면 네가 절대 이렇게 밝은 성격일 리가 없어.

by 는개

어느 날,

머릿속을 계속 헤집던 어떠한 토네이도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상처와 불안과 우울로 뒤덮여 모든 것이 그렇게만 생각되고, 세상이 온통 어둡게만 느껴지고 있겠지만, 사실 너는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영아시절 동안 충분히 예쁨 받으며 사랑받고 자랐기 때문에 그렇게 밝은 성격으로 자란 거야,라는 말이 시작이었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당연히 몰랐어요.

그때의 저는 항우울제와 항불안제가 증량된 상태였습니다. 느끼게 되는 모든 희로애락이 얕고 금세 휘발됐어요. 아무것도, 아무 감정도 없는 상태를 지속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이 제 귀에 제 감정이 섞이지 않은 채로 그대로만 들어왔어요. 그리고 잊었습니다.


이틀 걸러 한 번씩을 매일 반추하며 찾아오던 우울이를 맞이하던 시간,

매일매일 우울이와 심해로 심해로 가라앉았던 일과 같은 그 시간 속의 어느 날, 우울이랑 같이 잠겨있는데 처음으로 저 말이 사실일까, 를 생각했어요. 그 말이 몇 주 동안 띄엄띄엄, 저를 위성처럼 빙빙 맴돌았죠.

몇 달이 지난 후에야 그 순간이 촉발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나는 존재만으로 환영받은 적이 정말 있었던 걸까?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내 감정과 기억이 특정한 필터로 걸러져, 자기 연민과 자기 합리화로 나머지는 지우고 선택적으로 선명하게 남아 나를 가라앉게 만든 건지도 몰라.


하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내 기억 속에는 나라는 사람 그대로를 인정받았던 적이 없었어요.

계집년이 어디서 재앙만 부리고 다닌다며 패는 할머니가 싫어 어정쩡히 반항하는 날 두고 너는 참 이상한 애라고 아주 분명하게 말하던 부친의 그 목소리가 선명하게 귀를 할퀴었어요.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살던 여동생의 또래 아이들 사이에 엄마는 놀 또래가 없어서 혼자 있는데 언니도 같이 놀아,라고 달래면 노골적으로 언니랑 놀기 싫어, 떼쓰던 동생의 얼굴도 선명했습니다. 동생이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혼자는 싫어서 엄마가 떠밀어주길 바라면서도 비참해하고, 전부 싫다고 하면 어쩌지라고 불안해하던 그 마음들.


처음엔 밝게 잘만 어울리지만 어느새 무리를 형성하게 되면 이도 저도 아니게 혼자 서 있게 되던 날들.

그룹에 속해 있어도 겉도는 그런 감정들에 둘러싸여 언제나 혼자같이 느껴지던 외로움과 고독감. 초등학교 시절부터 느꼈었어요. 친구들과 함께 놀다 들어오는 길이면 자주 느꼈던 슬픔은, 내가 그 무리에 '꼽사리' 낀 것 같았다는 그 감정이었어요.


가족도 이렇게 날 싫어하는데 누가 날 좋아할까 싶었고 내가 나를 사랑한다, 돌본다는 그런 말이 없던 때. 저는 그저 하늘에 대고 수 없이 빌었어요. 절 예뻐해 주세요...라고.


그 비참함이 절정에 닿았던 건 고등학교 때였어요. 미션스쿨에 다녔었는데 거기에서 가장 심하게 따돌림받았거든요. 누구와도 함께 밥을 먹지 못하고, 음악실도, 미술실도, 이동수업 때도 홀로 있었어요.


하느님은 모두를 사랑하신다며!

그런데 나는 왜 사랑받지 못하는지.

사랑과 축복이 가득한 공간이라며!

그런데 나는 왜 그런 곳에서

가장 외로운 시간을 보내게 하는지.


아무리 소리쳐도 대답은 들리지 않아서

어느 순간부터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어요.


노력 없이 사랑받은 적이 없었어요.

점점 곁에서 사람들이 떠나고, 좋아하던 사람들도 나를 버렸었어요.

피상적이고 가식적으로 마음 없이 예의만 차리고 만났던 관계들만이 오래가니 나는 나의 본모습을 보이면 모두 떠나는구나, 생각했어요. 그래도 사람이 좋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여기저기 인위적으로 사람들 곁을 맴돌다가 결국은 혼자로 조그마한 원룸으로 숨어들었습니다. 혼자서 술을 마시고, 혼자 울었어요. 책이든 드라마든 예능프로그램이든, 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과만 웃었습니다.


일상이 깨져서 일을 못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고 나서는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맞지 않는 약들의 부작용을 견뎌내며 고통스러운 밤이면 수면제를 술과 함께 삼켰어요. 꽤 자주 몸에 틈을 만들어 흐르는 액체를 한 없이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살아있음을 원망하고 슬퍼했어요. 병원에 다니면서 선생님도 나를 미워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뒤로 더 많은 틈을 만들고 뚝뚝 흐르는 피를 보며 술을 마신채 울며 잠에 빠져들길 반복했습니다.


우울삽화로 나타나는 그 모든 기억들이 정말 선택적이고, 내 모든 시야가 일그러져 시시비비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왜곡된 눈으로 판단하고 규정짓고 살았던 거라면, 하는 생각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어떤 감정도 없이 그저 사실적으로 과거를 떠올리면서 시간순서대로 나열해놓고 보니 여태까지의 내 생각이 정말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또 내가 틀렸을지도 몰라.


날 버린 게 아니라 어차피 떠날 사람들이었던 거야.

날 버린 게 아니라 그 순간에 부모로서가 아닌 자식으로서 부모의 편을 들었을 뿐이었던 거야.

날 버린 게 아니라 그냥 시절인연이었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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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예쁨 받고 사랑받았다는 증거"가 어디 있는지 아직 찾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네가 절대 이렇게 밝은 성격일 리가 없어."라는 말을 버리지도 못했습니다.


물론 언제까지 우울함을 곱씹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시간은 흐르는데, 멈춰있든 뒤돌아 과거에 살든 역행하는 것은 매 한 가지니까.


이렇게 자꾸 부유하고 있는 게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때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삶은 극적이지 않아서,

영화처럼 한 줄기 빛 같은 희망이 또렷하게 나타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래사장에 있는 수많은 모래알 중 하나처럼 과거 속에 묻혀있어서 찾으면 발견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더라고요. 저는 거기에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착각이나, 미련 같은 우울한 기대인지 알 수도 없지만, 그래도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으니까.

그래도 우울이가 곁에 있는 게 이제 익숙해져서 우울이와 함께 있어도 견뎌내는 건 할 수 있으니까.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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