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 낮아도 마음 편히 숨어 살 수 있는 늪 같은 저지대에서 같이
우울이가 함께 있는 건 이제 익숙해요.
더는 마음이 찢어지게 괴롭지는 않아요 우울이가 옆에 있어도.
울고 있어도 마음이 저린 정도를 버티며 일상을 지낼 수 있어요.
우울증 진단을 받고 처음 치료를 하기 전부터
자존감을 찾아 여러 곳을 다녔어요.
자존감을 1mm 라도 높일 수 있다면 무엇이든 했어요.
여러 방법들을 레시피처럼 따라 하고,
상술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게 보이는 데도 사들이고
특별한 날에도 마시지 않는 몇 십만 원짜리 와인도 사봤다.
기존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면 혹시 달라질까 싶어
개명이라도 해볼까는 생각으로 이름을 받으러 가기도 했다.
그렇게나 방법을 찾아대고 있다는 곳 어디든 헤맸지만
결국... 어디서도 찾진 못했습니다.
자기혐오의 낭은 여전히 까마득하고
들여다볼수록 한 조각의 빛이 없어 무언가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매몰시켜버리자 싶어 메우려고도 해 봤는데....
... 채워지지 않더라고요.
판화 같은 하루를 끝도 없이 찍어내고 있어요.
미약한 바람에 꺼질듯한 촛불을 온몸으로 지키듯 하는 그런 매일,
순간도 마음 놓을 수 없는 똑같은 하루가 쌓여있는 걸 보다가 생각했어요.
아무도 위로하지 않는 나날을 살고 싶다고.
너무 평온해서 걱정도, 불안도 필요 없는 나날을.
어떻게든 나를 해치고 싶지 않아서,
가뜩이나 낮은 곳으로 더 내려가고 싶진 않았어요.
저는 그래서 집안에 잠겨있어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 곳도 가지 않아요.
내가 선택한 나의 반려만을 보고 하루를 보내며
어떤 가시 있는 것들도, 어딘가 모가 나있는 것들도 다가올 수 있을 가능성을 전부 차단했어요.
그리곤 긍정 확언 필사집을 필사하거나 긍정확언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있는 오픈단톡방에서 차분한 말들을 봅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책을 읽다 저에게 다가오는 구절들을 노트 한쪽에 적기도 하고요.
자존감이 낮아도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는
저지대.
자존감이 있어야 한다거나, 자존감이 낮으면 그걸 꼭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거나 하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아도 되고, 자존감이 낮은 것이 고쳐야 할 것이나 흉이거나 상처받게 되는 지점이 아닐 수 있는 그런 지역.
나를 소중히 하라던가, 나를 스스로가 사랑하라던가 하는 그런 구호 같은 말로 나를 채찍질하지 않아도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 내가 부끄럽다거나, 내가 나를 딱히 쓸모 있게 여기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이고 그러면 안 된다고 교화를 요구하지 않는 곳, 그런 낮은 지대에서라도 살아가자고. 그림자 같은 곳에서 함께 살아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