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싫어하지 않는 방법Ⅲ

인지치료 중입니다

by 는개


언젠가 영화감독 장항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인터뷰이의 질문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신에 찬 그의 대답과 그 목소리는 기억이 나요.



내가 '대단한 무언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그럼 훨씬 행복해진다고






많은 사람들이 동감한다며 끄덕이는 그 말에,

저는 어떻게 생각해도 동의할 수가 없었어요.







맨 처음 꾸었던 꿈은 성악가였어요.

모차르트의 교향곡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보고 거기에 반해서 나도 저 노래를 하고 싶다, 이게 전부였어요. 정말 하고 싶은 건 처음이어서 테스트를 갔는데, 가서 바로 거절당해야 했어요. 멋진 저음이라고. 하지만 [밤의 여왕의 아리아]로 무대에 서긴 힘들 것 같다고. 타고나기를 알토 톤이라 많이 연습해야 메조소프라노 정도만 될 거라고. '멋진 저음'이라는 건 저에겐 의미가 없었어요.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잖아요.


그때가 계기였던 것 같아요

아무리 원한대도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의지와 노력의 문제가 아니구나.


그 이후로 저는 작게만 바랬던 것 같아요. (혹시 저만 그랬던 걸까요?) 대통령이 돼서 나라를 바꿀 거야! 라던지, 과학자가 돼서 세상을 뒤흔들만한 연구를 하겠어! 라던지 큰 포부를 갖는 반 친구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걸 바라고 있었어요.


그 부분에서만큼은

굉장히 행복했던 기억이

확실하게 나요.

그 후로 오랫동안


시도했다가 안 돼도

얼마든지 불행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니까.

버티기만 하면 될 것만 같았거든요.




한 번도 '대단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없다

왜냐면 나는 정말
'대단한 무언가'를 바란 적이 없었으니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래요.

정말 저는 '대단한 무언가'를 단 한 번도 바란 적이 없었어요.


저는 세상에 이야기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고 싶었어요.


바라던게 아주 구체적이었던 것도 아니에요.

하다못해 역사학자도 되고 싶었던 사람의 후보군에 있었어요.

(역사가 'history' 잖아요. 그만큼 어떤 이야기도 좋았어요)


청소년기까지 거쳐 제가 갖고싶어 한

가장 구체적인 무언가의 이름은

'작가'였어요.


어느 때는 글이었고,

어느 때는 사진이었고,

어느 때는 영상편집이었죠.


중학교 시절 인터넷에 인터넷에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그게 유행이었어요) '작가'가 되고 싶다,는 흥미를 가졌을 때는 '작가'라는 호칭을 가질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수'가 되고 싶었을 때는 아는 사람만 아는 그중에서도 좋다고 말하는 사람만 좋다고 하는 그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때의 제 롤 모델은 [미선이]라는 이름의 밴드였습니다. (가수 루시드 폴이 솔로 이전에 하던 밴드/ 영화 <버스, 정류장> OST 「머물다」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트북 하나 장만하기도 어려운 내 형편에 한 두푼 하는 것도 아닌 키보드를 붙잡고 노래를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현실과 타협한 게 다시 작가였습니다.

펜과 종이, 수첩을 살 수 있는 돈은 밥 한 끼만 굶으면, 버스 한 번만 안 타면 마련할 수 있었고, 그래도 내가 글 쓸 만큼의 원고지는 내 힘으로 살 수 있으니까. 구형 컴퓨터라도 텍스트 파일이든 한글 파일이든 쓸 수 있었고 플로피 디스켓도 있었으니 한글 문서 몇 개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은 되니까.


그 이후 소설을 전공하며 바란 건 작가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있는,


글 쓰는 사람으로설 불릴 수 있는 세상에서의 자격이었습니다.

신춘문예에 응모하면서 선배들이나 동기들은 처음엔 중앙지를 우선으로 투고하곤 했지만 저는 1학년때부터 가리지 않았었어요. (당연히 실력이 안되니까 안 된 거겠지만 그거랑 별개로 어린 나이에 어려서 가질 수 있는 치기와 허세가 없었다는 말입니다^_^:::::::::::::::::::::::::::::::::)








<브런치>에 글을 쓴 것도 올해가 처음이 아니에요.

2022년에 지원했었는데 그 때는 떨어졌었어요.


사실, 떨어지는 거 별 거 아닌데,

이미 수 없이 많이 떨어지고 안 됐었는데,

아무것도 아닌데. 다시 하면 되는데,

그땐, 정말 마음에 소금 알갱이만큼의 틈도 없어서

그 어떤 긍정적인 인식도, 인지도 되지 않을 때 였습니다.

절망으로 만들어진 절벽 끝에 간신히 매달려있었거든요.

가뜩이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중이라 중립적으로 보이기만해도 다행이었어요.


우울이에게 잡아 먹힌 채, 우울이에게 잠식되어 있었다 보니까

손톱조각 같은 아주 작은 거절이 저에겐 허리케인이 되어버려서 어쩔 수 없이 추락했어요.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내가 그렇지 뭐.

잠시도 버틸 힘이 없어서 마음으로 숨만 쉬며 살다가

지금에 다다랐어요.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까, 혹은 나와 같은 감정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브런치>도 시작했어요. 같진 않아도,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람이라도 발견하고 싶어서, 내가 찾아 헤매는 동안 누군가 나도 그렇게 느꼈었다고 말해주기를 바라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브런치도 아니고, 런치도 아니고

'런치가 완전히 지난' 시간에

커피 한 잔을 들고, '브런치'에 와서 '브런치'를 먹어요.


문틈처럼 작은, 아주 소소한 에피소드들이나

내밀하다 못해 아주 개인적이고 개인적인 얘기를 보고 있습니다.


작가로는 이룬 게 없을지 몰라도,

그래도 강사로서 많은 아이들에게 힘이 되는 사람은 되었어요.


자랑스러워는 못해도 부끄러워하지는 않을 만한 보통의 존재가 되고 싶었는데 그게 꼭 작가로서 여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조금은 '싫은 나'의 크기가 작아지고 또 조금은 괜찮아졌습니다.


겨우 세상에 한 발,

겨우 사람에게 한 걸음.

내가 싫어지지 않는 쪽으로 또 한 걸음.


어디에 없을 것 같은

당신들의 아주 개인적인 감정 쪽으로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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