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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지 않은 착한 딸

by 김느리

나는 오 남매 중 셋째이다. 요즘에는 보기 드물게 많은 식구인 데다 내가 셋째라고 말하면 주변에서 항상 이런 말들을 하곤 했다. "얼굴도 안 보고 시집간다는 셋째 딸이네~", "가운데 껴서 많이 고생했겠는데?" 그런데 두 번째 말은 아무래도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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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어릴 적 엄마가 장을 보고 오는 날이면 손짓으로 나를 조용히 베란다로 불렀다. 베란다 모퉁이에 숨어 오렌지 주스를 한 컵 따라주었고 나는 그것을 조용히 혼자 마셨다. 우리 집은 식구가 워낙 많다 보니 주스 한 병을 사다 놓으면 냉장고에 들어가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때문에 그 주스가 모조리 사라지기 전에 엄마는 내게 주스 한잔을 먼저 건네주신 것이었다.


내가 또래보다 많이 왜소하기도 했지만 여러모로 엄마는 나를 '특별히' 예뻐해 주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내 그릇에 먼저 올려 주고, 좋은 게 있으면 항상 먼저 챙겨 주고,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있다 하면 언제든 무한지지를 해주셨다. 어쩌면 받는 것에 익숙한, 복에 겨운 현재의 내 삶이 엄마에게 받았던 넘치는 사랑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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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스로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꽤 착한 딸이었다. 남매가 많은 데다 터울이 크지 않아 남매끼리 싸우는 일도 많았고, 또 밖에 나가 친구들과 다투고, 어디 가서 다쳐 오고, 우당탕탕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는데 유독 나만은 그런 일이 잘 없었다. 크게 나쁜 짓을 해본 적도, 친구들과 싸우거나 사춘기로 엄마에게 크게 반항하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심부름을 시키면 "네가 해!", "싫어. 네가 해!"라며 서로 미루는 사이 나는 군말 없이 심부름을 다녀오곤 했었다.


그리고 우수한 성적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 그리고 결혼까지도 부모님을 크게 걱정 끼치지 않고 때에 맞춰 알아서 잘 헤쳐 나갔다. 모나지 않게 그저 무탈하게. 지금껏 그렇게 살았다. '엄마는 그래서 날 유독 예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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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 잘 듣는 착한 딸이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 집은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가 많이 싸우셨다. 여러 가지 이유였겠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어린 날의 나에게 그 싸움은 늘 힘들고 마음이 아팠다. 남매끼리 싸우고 소리치고, 말 안 듣고, 어느 하나 뜻대로 되지 않아 보였던 엄마의 삶이 곧 아빠와의 싸움으로 이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내가 심부름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크게 걱정할만한 일도 만들지 않았다. 혹여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착한 딸이 하나 있으면 엄마가 조금 덜 힘들겠지. 아빠와는 조금 덜 싸우겠지.' 그런 마음으로 착하게 살기로, 그렇게 어느 날 정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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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벌써 서른을 훌쩍 넘겼다. 집을 나와 독립한지도 어언 10년이 넘었고 결혼을 해 나에게도 또 다른 가족이 생겼다. 하지만 그 긴 세월을 지나와도 여전히 엄마의 삶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아직도 하루가 멀다 하고 아빠와의 전쟁을 벌이고 늘 자식 걱정에 한시름 놓지를 못 하는 우리 엄마.


나는 결코 착하지 않지만 착한 딸로 살기를 택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훌륭하게, 잘 살아내려 노력하고 있다. 적어도 나 때문에 엄마가 걱정하지 않도록, 착한 딸 하나라도 엄마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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