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_엄마 말고 아빠 딸

by 피츠로이 Fitzroy

가족 모두 함께 오늘 밤을 나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공포를 9살에 처음 느꼈다. 물건에 맞아 죽거나, 칼에 찔려 죽거나, 불에 타 죽거나.

아빠의 고성과 엄마의 비명, 흐느껴 우는 소리, 물건이 떨어지고 깨지는 소리 등을 들으며 안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상상했고, 이 싸움으로 누군가 죽게 되지 않을까 두려움에 빠졌다.

엄마와 아빠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싸웠고 나는 똑같은 횟수만큼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어느 날, 말려 보겠다는 생각으로 발끝에 있는 용기까지 그러모아 방문을 살짝 열었다. 바로 코앞에 거인처럼 큰 몸뚱이가 문 앞을 떡 버티고 있었다. 아빠였다. 족히 2미터는 되어 보였다. 아니 3미터. 얼굴을 찾아 끝도 없이 올려다보니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는 눈동자가 소스라치게 섬뜩했다.

“들어가.”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그 후로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절대 내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아니 나가지 못했다. 아빠는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되었다.

이불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파고 파고 더 들어가 정 가운데, 가장 깊숙한 부분이다 생각하고 멈추니 내 숨

결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 동생이 있었다. 동생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았다. 귀를 막고 있었다.

“후이야 손을 이렇게 모아봐, 누나 하는 거 봐.”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제발 누구든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아빠랑 엄마가 싸우지 않게 해 주세요.

아빠가 엄마 때리지 않게 해 주세요.

아빠랑 엄마가 물건을 던지지 않게 해 주세요.

칼로 찔러 죽이지 않게 해 주세요.

집에 불을 질러 죽이지 않게 해 주세요.

제발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게 해 주세요.

서로 죽이지 않게 해 주세요.

착한 유영이가 되겠습니다, 제발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기도를 멈추면 영원히 싸움이 멈추지 않을 것 같았고, 기도를 멈추면 모두 함께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끝까지 “누나 무섭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후이가 그렇게 말하면 “그냥 누나랑 둘이 살자.”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우리 집은 아빠의 회사 사무실과 한 층에 있었다. 그러니까 메인은 사무실이고, 살림집은 어쩔 수 없이 끼워 넣은 느낌이었다. 사무실엔 진귀하고 비싸 보이는 물건들이 많았다. 그중 내가 제일 좋아했던건 안동 하회탈. 여러 모양의 탈들이 벽에 주욱 진열되어 있었다. 어딘가 조금 우스꽝스러운 모습. 넋 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잘도 갔다. 아빠는 언젠가 회사 손님에게 이걸 오래도록 자랑했다. 장인의 손에서 태어났다던가.

두 번째로 좋아했던 건 수족관. 사무실을 가로질러 널찍하게 자리 잡은 수족관 안엔 크고 작은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어른 팔뚝보다 큰 것도 있었다. 물고기가 죽으면 뒤집어져 물에 둥둥 크게 된다는 사실도, 빨리 건져내지 않으면 다른 물고기들의 밥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엄마는 수족관을 청소하는 날이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던가. 양동이, 양동이가 끝도 없이 널려 있었다.

반대로 사무실에 딸려 있던 ‘우리 집’이라고 불렀던 그 공간은, 좁고 화장실도 안에 없고, 누가 봐도 사무실과의 큰 온도 차를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그 집엔 아빠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빠는 밤늦게 인지 아침 일찍 인지 잘 모르겠는 애매한 시간에 들어왔다. 밤에 아빠를 기다리는 엄마의 표정은 비장했다가 쓸쓸했다가 시시각각 변했다. 보자기에 옷가지를 싸서 보따리를 몇 개씩 만든 후 현관문 앞에 앉아 아빠를 기다릴 때의 엄마는 비장해 보였다. 불도 켜지 않은 컴컴한 사무실에서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땐 그 쓸쓸한 기운에 가슴 한쪽이 우그러들었다. 직접 볼 용기가 나지 않아 수족관을 통해 몰래 숨죽여 본 그녀의 실루엣. 담배 끝에 붙은 빨간 불이 수족관을 통과하며 흩어져 보였다. 처음으로 본 엄마의 담배 피우는 모습.

“엄마 왜 거기 혼자 있어.” 그 한 마디는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나를 앉혀 놓고 자주 물었다.

“난 니 아빠랑 못 살겠다. 너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 넌 아빠 딸이니까 아빠랑 살 거냐?”

마음이 벼랑 끝에 가 앉았다. 단지 내가 궁금한 건 둘이 낳았으면서 내가 왜 아빠 딸인 건지, 그리고 엄마랑 아빠랑 안 살고 후이랑 둘이 살겠다 하면 뭐라 할 건지, 그러니까 그건 대답을 원하는 질문인 건지. 결국 한 번도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꿈을 꾸었다. 엄마가 외숙모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빠가 자기를 때렸다고 했다. 싸움이 깊어졌고 반항하는 자기를 침대에 묶어 놓고 때렸다고. 그런데 딸년이라고 하나 있는 게 엄마 편 한 번을 안 든다고, 나와서 말리는 꼴을 못 봤다고. 가슴에서 큰 덩어리가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또 다른 꿈을 꾼다. 엄마가 이모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빠가 술 접대를 하면 룸살롱에 가서 여자도 끼고 논다고. 술이 고주망태가 돼서 거기 있는 사람들을 모두 다 운전해서 집까지 바래다주고 자기도 ‘갈지(之)’자로 운전해서 집에 온다고. 집에 오면 새벽 3시, 4시라고.

어디선가 튀어나온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말한다. 엄마의 갈비뼈 하나가 금이 갔다고. 옆에 같이 듣던 누군가가 빠르게 치고 들어온다. 아빠가 발로 차고 갔었다고. 엄마의 배를 세게 한 대 찼고, 엄마는 그대로 쓰러져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고. 자기 집에서 계속 돌봐 줬었다고.


나는 기도를 했다. 엄마랑 아빠가 싸우지 않게 해 달라고. 아빠가 엄마 때리지 않게 해 달라고. 물건을 던지지 않게 해 달라고. 칼로 찔러 죽이지 않게 해 달라고. 집에 불을 지르지 않게 해 달라고. 제발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가 습관이 되어,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는 날에도 똑같은 기도를 하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매일 같은 내용의 기도가 입에서 줄줄 나왔고, 기도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한 듯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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