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_빨간딱지와 왕따

by 피츠로이 Fitzroy

아빠는 경상북도 안동에서 아파트 건설현장을 맡아 전기공사 감독관으로 일했다. 알아주는 굵직한 건설회사의 공사를 따낸 아빠는 목에 힘을 주고 다녔다(왜인지 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일이 계속 늘어났고 이대로라면 부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 아니냐는 여론이 형성됐다(네 식구 사는 집안에서). 어느 날 아빠는 우리 가족 모두를 차에 싣고 아파트 공사가 막바지인 현장으로 데려가더니 “저기 보이는 저 아파트 49평짜리로 이사할 거야.”하고 뿌듯한 듯 말했다.

“층수도 로열층인 7층이라고!”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 우렁차기까지 했다.

아빠가 학교 운동장에 크레인을 동원시켜 새 모래를 쫙 깔아주고 내가 반장이 되었던 해였다. 엄마가 열심히 학교를 드나들었고 나도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등 열심히 부모를 도와, 학교에서 가장 돋보이는 아이로 자리매김했다. 나를 모르는 선생님이나 학생은 거의 없었다.

아파트 이사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이사를 코앞에 두고 아빠는 부도를 맞았다. 집안 곳곳에 알 수 없는 빨간딱지들이 붙었다. 엄마와 나, 동생은 수원에 사는 이모네 집으로 야반도주를 했고, 한동안 아빠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안동에서 연예인처럼 주목받던 나의 학교생활은 안녕이란 인사도 못 하고 갑작스레 끝이 났다. 미래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얹혀 있는 이모네 집은 이모네 세 식구만 살기에도 좁아 보였다.

엄마는 식당일을 시작했다. 집엔 돈이 필요했다. 엄마가 집안의 가장이 되자 나의 학교생활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학교는 내가 다니는데 왜 본인이 그렇게 교문이 닳도록 학교를 드나드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날들도 있었는데.

보란 듯이 나는 새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들과 친구가 되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반 친구들 모두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새로 전학 온 애 봤어?”

“아 유영인지 뭔지.”

“걔 어디서 온 애냐, 사투리 쓰는데 뭐라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더라.”

“아 촌스러워 같이 못 놀겠어, 오늘부터 걔랑 아무도 이야기하지 마, 걸리면 나한테 죽는다.”

반에서 가장 센 아이가 우리 반 모두를 향해 갑자기 그렇게 말했다.

“야아- 다들 잘 들어, 오늘부터 유영이랑 아무도 놀지 마.”

그렇게 나는 아무하고도 못 노는 아이가 되었다. 곧이

어 괴롭힘도 시작됐다. 놀리는 강도는 점점 심해져 화장실에 다녀오면 내 신발주머니는 누군가에게 짓밟혀있기 일쑤였고, 가끔은 교과서도 다 찢어져 있었다.

매일 아침 엄마와 싸우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엄마 학교 가기 싫어, 나 진짜 학교 가기 싫어.”

가장 외로운 때는 점심시간이었다. 혼자 밥 먹기는 죽기보다 싫어 먹는 것을 포기하고 점심시간 내내 학교 안을 배회하며 시간을 때웠다. 건물의 1층에서 4층까지, 이 복도 끝에서 저 복도 끝. 그다음은 옆 건물.

우유 당번은 어째서인지 한 학기 내내 나만 하고 있었다. 우유 팩을 깨끗이 헹구고, 접힌 모서리들을 편평하게 펼치는 것은 이제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적은 갈수록 떨어졌다. 모든 것에 의욕이 없었고 선생님은 생활 통지표에 ‘뭐든 열심히 하지 않는 아이’라는 코멘트을 달았다. 생활 통지표에 칭찬 외에 다른 내용이 적힐 수가 있다는 것에 가족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5학년이 되면서 반이 바뀌었다. 중심에서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과 다른 반이 되었고, 반에서 가장 센 아이는 다른 아이가 되었다. 나는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학기 시작 첫날 우리 반의 가장 센 아이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너를 위해서라면 나는 뭐든 할 수 있어.’라는 눈빛을 장착하고.

5학년 생활은 너무나 편했다. 그냥 소현이가 시키는 것만 하면 됐다. 소현이가 원하는 것을 원한다고 말하기 전에 미리 앞에다 가져다 놓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소현이에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녀의 말 한마디에 모두 군소리 없이 움직였다. 나는 소현이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 그녀의 지시에 따라 내 옆에는 항상 친구들이 붙었다. 혼자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옆 학교와의 패싸움이 있던 날에도 내 옆에는 친구들이 있었고, 소현이가 좋아하는 남자애에게 쪽지를 대신 전하기 위해 하루 종일 그 남자애 집 앞에서 그를 기다릴 때도 내 옆에는 친구들이 있었다. 공부 안 하기로 유명하고 말썽 부리기로 소문난 아이들이 항상 내 옆에 있었다.

친구는 얻었지만, 문제아가 되어 학교에 엄마를 데려가야 하는 상황이 오고 말았다. 그래도 나는 친구가 있는 편이 좋았고, 친구들과 함께 왜 그 남자는 우리의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하는 거니, 하며 같이 울다 보니 5학년이 끝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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