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_어쩔 수 없이 가족

by 피츠로이 Fitzroy

집에 오니 아빠가 왼쪽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일을 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졌는데 크게 안 다치려고 팔로 바닥을 짚었더니 그대로 부러져 버렸단다. 엄마가 어디서 사자가 박힌 굵은 금반지를 해다가 아빠 손에 끼워줬었는데 그 반지가 두 동강 나 있었다. 팔이 부러지고 바로 병원으로 달렸는데 손이 퉁퉁 부어 반지가 빠지지 않아 펜치로 끊었다 했다. 어서 이 멋진 걸 가져왔냐며 히죽거리던 아빠 얼굴이 생각났다.

“남 밑에서 일하기 싫다고, 가기 싫은 회사를 억지로 억지로 다니더니 결국은 팔이 부러져서 왔네.”

엄마가 그렇게 말했지만 본인에게 확인은 못했다.

회사에 못 나가자 아빠는 느닷없이 공부를 시작했다. 자세한 사정은 말하지 않았지만 전기공사 기사 1급 특급기술자 자격증을 따겠다고 했다. 깁스한 팔로 꼭두새벽부터 아침 이슬 맞으며 학원에 가더니, 집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밤늦게까지 공부를 했다. 아빠의 공부 방법은 무식할 만큼 정직했고, 책상에서 잘 일어나는 법도 없었으며, 무심결에 지나가다 들여다보니 달인이 여기 있었다. 노트 정리의 달인.

노트 정리만 잘하면 1등이 될 수 있다는 게 아빠의 논리였다. 예술 작품이라도 불러도 될 법했다.

“대학 나온 애들도 수두룩하게 떨어지는데, 남들보다 더 공부해야 붙지.”

아무리 똑똑한 애들도 성실한 사람에겐 진다고 아빠는 믿었다.

공부하는 아빠 대신 엄마는 돈을 벌러 나갔고, 아빠는 미안한 마음에서인지 하루도 빼먹지 않고 엄마를 데리러 갔다. 끝나는 시간에 맞춰 식당 앞에 차를 대고 엄마가 나오면 정성스럽게 모셔 온다고 아빠는 말했는데, 엄마는 차라리 아빠가 안 왔으면 좋겠다 했다.

“진짜 왜 그래, 그럴 거면 오지 마! 일하다 보면 5분 10분 늦을 수도 있지 왜 남의 집 앞에서 빵빵거려, 빵빵거리기를.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어!”

“끝날 시간이 되면 바로 나와야 되는 게 맞지.”

“아니 어떻게 사람이 하던 일 놓고 시간 됐다고 잽싸게 내빼. 하던 거는 다 해놓고 나와야지. 클락션은 왜 눌러대 왜! 아 진짜 저 급한 성격 어떡하냐. 오지 마, 내 남사 시려서 일을 못 하겠으니까 오지 말라고!”

그래도 아빠는 한 번을 안 빼먹고 매일 데리러 갔다. 매일 클락션을 울려댔단다.

엄마가 남의 식당에서 일할 때는 어떻게 하는지 함께 꽃동네로 2박 3일 봉사 활동을 가서 알았다. 아빠가

우리 남매의 교육을 목적으로 잡은 계획이었는데 나와 동생, 엄마를 꽃동네 정문 앞에 내려주고 정작 본인은 차를 몰고 휭 떠났다.

엄마는 일할 때만큼은 정말 프로 같았다. 다만 무릎을 못 쓰는 사람처럼 기어 다니고, 허리를 못 쓰는 사람처럼 허리를 못 드는 게 이상하게 자꾸 화가 났다.

엄마와 나는 아저씨들이 모여 생활하는 곳으로 배정받아 그곳에서 식사를 차리는 일을 맡게 되었다. 엄마는 그곳에서 상주하며 일하는 분과 최대한 화합 하고자 애를 쓰고 있었다. 섣불리 나서지도 않고, 그렇다고 방관하지만도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식사가 착착 준비되어 가는 인상을 받았다. 첫 호흡인데도 불구하고 어제도 같이 일한 사람들 같았다.

엄마가 누구 밑에서 일할 땐 저런 말투를 쓰고 저런 행동을 하는구나 처음 알았다. 엄마의 약한 모습을 본 거 같아 마당에 널어놓은 아저씨들의 빨래만큼이나 마음이 축축해졌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도 시키기도 전에 미리 움직여 정리를 하고, 마지막까지 혼자 남아 주방 청소까지 마쳤다. 가스레인지 주변의 기름때를 박박 닦고, 싱크대 수전에 낀 물때도 없앴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온 엄마가 그런 말을 했었다.

“오늘 일한 중국집은 부엌에 어찌나 바퀴벌레가 많은지, 큰 놈이 나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데 티는 못 내겠고. 아이고.”

또 어떤 날에는

“아무데서나 냉면 시키지 말아, 유영아. 면을 삶아가지고 그렇게 더러운 물에다 헹구더라. 깨끗하게 못 하더라고.”라고 했다.

파출부는 원하는 식당을 고를 수 없다. 매번 바뀌는 식당에서 매번 처음 보는 사장과 일하는 엄마는 얼마나 고달팠던 걸까.

공부 모범생 아빠는 드디어 시험을 치렀고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엄마와 아빠는 하나의 수화기에 각자 귀 한쪽씩을 바짝 붙이고 결과를 들었다.

“합격! 합격! 합격이다아아!!!!!!!!!”

엄마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었다. 엄마가 너무 좋아해서 나도 좋았다. 엄마가 이제 식당일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니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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