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_지옥과 자전거와 크림수프

by 피츠로이 Fitzroy

외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누워 있던 방을 기억한다. 외삼촌 집의 방이었고, 그 집의 세 개의 방 중, 가장 작고 가장 추워 보이는 방이었다. 그 방에 한 달 인가 누워있다가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겨울도 아니었는데 그 방은 항상 너무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김이 호오호오 나왔다.

장례식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치렀다. 집 앞 골목까지 쭉 파란색 천막이 쳐졌고, 평상이 만들어지고 앉은뱅이 상에서 사람들은 먹고 마셨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불러 그 소식을 알았다.

“유영이 오늘 조퇴해라.”

엄마는 하얀 상복을 입고 있었다. 검은 머리 위에 작고 하얀 리본이 애처롭게 달려있었다. 열심히 음식을 나르며 조문객들을 맞고 있었다. 운 것 같진 않았는데 화장기 없는 민낯이 투명하게 보였다. 나를 발견하곤 까슬한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왔어.”

손은 바싹 말라 있고 거기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온기도 냉기도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본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었다.

중학생이 되고 맞은 첫 봄,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다.

‘사람은 왜 죽을까, 죽는 게 무섭다.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건가.

어차피 죽을 거 왜 태어났을까.’

교회에 열심히 다니던 동네 친구가 그런 말을 했었다.

“교회 안 다니면 죽어서 지옥 간데.”

그 말을 듣고 온 날, 지옥에 가면 어쩌나 무서워 누워서 눈물을 훔쳤다. 지옥은 어떤 곳이지, 오늘 밤 죽지 않고 무사히 살아서 일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었을 그때, 나는 외할아버지와 자주 마주쳤다.

“어이, 유영아.”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는 늘 어김없이 마주쳤다. 어떤 때는 등교하는 아침에도. 날 따라다니나 싶게.

“어이, 유영아.”하고 어디선가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끽끽 힘든 소리를 내는 고물 자전거를 타고 불쑥 나타나서는 나를 불러댔다.

외할아버지는 자전거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항상 애지중지했다. 동네를 순찰이라도 하는 건지 구석구석 꼼꼼하게 자전거로 누비고 다녔다. 자전거를 굴리는 뒷

모습이 씩씩하다고 생각했던 날들.

외할아버지는 우리 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빌라에서 경비 일을 했다. 경비실은 하나였고 경비원도 한 명이었다. 그 빌라엔 같은 반 친구도 살고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경비원에게 지급된 짙은 남색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근사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유니폼이 안 어울리는 것도 아니었다. 원래부터 그냥 외할아버지의 옷 같았다. 왼쪽 가슴에 노란색 실로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빌라에 사는 사람들이 어찌나 불만이 많은지 모른다고도 했다. 경비실은 좁고, 좁은 데다 잡동사니가 많아 어수선했는데, 외할아버지는 매번 나를 불러들여 경비실 안에 앉히길 좋아했다. 먹을 것이 어디선가 불쑥 올라왔다. 과자나 사탕 같은 것들. 내가 좋아하는 종류는 없었다.

“우리 손녀예요, 손녀.”

지나가는 사람에게 일일이 설명한다. 묻지도 않는데.

외할아버지는 무슨 연유에선지 혼자 살았다. 이모들도 외삼촌도 (엄마도) 외할아버지와 같이 살아 주지 않았다. 외로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자는 밤에 죽는 게 무섭다는 생각을 안 할까, 나처럼.

외할아버지가 혼자 지냈던 곳은 집이라기보다 그냥 방이었다. 방 하나가 침실도 되고 부엌도 되고 거실도 되고 베란다도 되었다. 두툼한 요와 이불이 깔려 있고, 그 옆에 때가 잔뜩 낀 냄비와 도마, 휴대용 버너가 있고, 그 옆에 오래된 라디오가 있고, 그 옆에 덜 마른빨래가 걸려 있다. 화장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전구 불 하나가 켜지자 방이 노랗게 물들며 벽에 여러 그림자를 그렸다.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한층 진해진 느낌이 들었다. 바닥의 요는 원래가 저런 누런색인가.......

자전거를 대놓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할아버지의 좁은 어깨가 눈에 밟혀 나는 쉽게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금방 갈 수 있는 거리를 일부로 돌아다니며 그 집 앞을 피해 다녔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될 무렵, 우리는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고,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외할아버지는 더 이상 경비 일을 하지 않았다. 왜 경비 일을 그만두었으며 왜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내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외할아버지는 아빠와 저녁상을 받았다(거기엔 가끔 나도 끼었다). 밥과 반찬이 사라지고 소주와 간단한 안주가 올라오면 그렇게 술상이 된다(거기엔 나는 끼지 않는다). 술잔이 채워짐과 동시에 외할아버지는 리드미컬하게 술잔을 입

에 가져가고, 턱에서부터 시작한 붉은 기가 눈 언저리까지 올라오면 좀 아까 끝난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도돌이표를 연주하는 것처럼 똑같은 이야기가 처음부터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옆에 꼼짝없이 붙잡힌 아빠가 불쌍하다 생각할 즈음, “아버지 그만하셔.”하고 엄마가 모든 상황을 종료시켰다. 그러면 모두가 잠자러 들어가야 했다.

엄마가 정하는 공식적인 잠잘 시간이 되면 내가 라디오를 켜는 것과 동시에 외할아버지는 「세계 위인전」이라는 책을 들었다. 음주 독서가 시작된다. 총 101권으로 구성된 세계 위인전은 내 것으로, 언제부터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언제 마지막으로 읽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오래전 엄마의 선물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이 집에서 오랜 시간 먼지만 뒤집어쓴 채 자리를 지켜왔던 그 위인전을 애지중지 아꼈다.

1권에서부터 시작해 하나씩 잡으면 어느새 101권. 한 바퀴가 돌면 다시 1권부터 시작한다. 예수도 있고 세종대왕도 있고 정약용도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었는데 언젠가 내게 '석가모니'를 읽어보라고 했다.

외할아버지와 한방에서 자게 된 날이 있었다. 잠든 외할아버지의 숨소리가 오래전부터 일정하게 들려

왔다. 나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불 꺼진 방에 가만히 누워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한두 방울 떨어지던 눈물이 갑자기 강물처럼 불어났고 흐흐흑 하고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울음을 삼키려 애쓰니 얼굴에서 열이 나고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귀밑인지 턱인지 모를 부분이 아파 왔다.

뭐가 슬픈지 모르겠는데 세상 모든 게 다 슬펐다. 언젠가 나도 죽고 옆에 외할아버지도 죽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불이 켜지고 토끼 눈을 뜬 외할아버지가 물었다. 눈은 놀랐는데 목소리는 침착했다.

“유영아 왜 그러니.”

나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외할아버지는 내게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그 이후 단 한 번도 그 일에 대해 묻지 않았다. 엄마나 아빠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그게 고마웠다.

내가 왜 슬픈지 외할아버지는 이해해 줄까, 이야기하고 싶지만 입을 떼지 못하는 바보 같은 나.

그 무렵 나는 점점 더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졌다. 친구들이랑 어울려 노는 대신 낮에는 비디오 가게에서 살았고, 저녁에는 텔레비전 채널을 MTV에 고정한 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린 파파야 향기」란 영화도 알게 되었고, 하얀색 타이즈 하나만 신고 나온 「Queen」의 ‘프레디 머큐리’가 기타를 부시는 장면을 보며 자유란 저런 건가 감탄했다.

밤에는 라디오를 들었다. 10시 「별이 빛나는 밤에」를 시작으로 자정을 넘기고, 그리고 새벽 두 시 세 시까지 라디오를 듣느라 잠을 잊었다. 라디오는 밤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라디오를 오래 듣고 늦게까지 깨어 있는 밤에는 항상 슬퍼졌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는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새벽 세 시까지 안자는 친구들은 없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됐고, 집과 비디오 가게만을 오가며 지내던 어느 날, 엄마 아빠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을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자동차 사고가 있었고, 뒤차에 받혔다고 하는데, 크게 다친 데는 없지만 병원에 있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소릴 했다.

닷새간 병원에 있으니 외할아버지와 동생의 식사를 챙기라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내가 이제 이 집의 가장이 되는 건가. 갑자기 커다란 자두 씨가 목에 쿡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5일간 이 두 사람의 밥을 챙겨줘야 한다는 생각에 심각한 스트레스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밥도 해야 하고, 반찬도 만들어야 하고, 끝나면 설거지도 해야 한다. 끼니를 거르게 하면 안 되고, 식사 시간도 잘 맞춰 줘야 하고, 영양소에 맞게 식단

도 짜야한다. 그러니까 이 모든 걸 나 혼자 해야 한다...... 가출을 할까 잠시 고민했다.

삼 일째 되는 날, 모든 것이 무너졌다. 계란 프라이는 매 끼니마다 먹었고, 김도 두 번이나 먹었고, 엄마가 해놓은 냉장고 있던 밑반찬은 다 먹었고, 이제 김치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 점심은 3분 카레를 데워 먹고 오늘 저녁은 분홍 소시지를 부쳐 먹으면 내일은 도대체 뭘 먹어야 하지. 엉엉엉엉 나는 눈물도 나고 콧물도 났다. 나한테 왜 이래.

“엄마 언제 올 거야, 흐아아아아아앙. 외할아버지는 왜 우리 집에 있는 거야.”

내 어깨에 머물러 있는 가장이라는 짐이 너무 무거워 울음이 터져 나왔다.

외할아버지는 저어기 어디 시골이라는 본인의 고향을 다녀온 후 집에 돌아와 갑자기 병을 얻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한 달을 누워있던 외삼촌 집의 그 방은, 춥고 작은 방이자 내가 가수 전람회의 노래를 처음 들었던 방이다. 사촌 오빠가 모으던 무수한 카세트테이프들. 처음 전람회의 노래를 들었을 때 가슴 밑바닥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울컥한 무언가를 느꼈다.

외할아버지는 그 방에 깔아 놓은 요 위에서 너무나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두툼한 이불을 덮었는데 삐져나온 얼굴이 한치 삐뚤어짐 없이 반듯한 모양으로 천장을

향해 있었다. 방문이 열릴 때마다 살짝살짝 보이는 방안의 풍경을 통해서만 외할아버지의 모습을 확인했다. 미동 하나 없는 모습. 내가 알던 외할아버지의 모습과 너무 달라 그 방에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람이 왜 저렇게 작아졌지. 그리고 나는 무서워졌다.

외할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함께 사는 동안 딱 한 번 내게 먹고 싶은 것을 말한 적이 있다.

“유영아 크림수프 먹고 싶다. 왜 물에 타서 끓여 먹는 노란 수프 있잖아. 유영이가 한 번 해줘라.”

나는 장례식이 치러지는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오랫동안 대문 밖에서 서성였다. 인생에서 처음 겪는 낯선 풍경들. 발이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우는 사람이 별로 없다. 엄마도 이모도 외숙모도. 모두 숨어서 우는 걸까. 내가 밤에 숨어서 울었던 것처럼. 자전거를 타고 빙글빙글 동네를 순찰하던, 아니 나를 순찰하는 것 같았던, 크림수프가 좋은 외할아버지 안녕, 안녕. 나는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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