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교내 독후감 대회가 열렸다. 선생님들로부터 글을 잘 쓴다며 몇 번 칭찬을 받았는데, 칭찬을 받으면 더 잘하고 싶어 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몇 달 전부터 독후감 대회가 빨리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잘할 자신이 있었다.
제출 기한에 맞춰 독후감을 완성하고 마지막으로 읽어본 내 글은 스스로 보기에도 몹시 만족스러웠다. 언제 결과가 나오나 몸이 달았다. 담임 선생님은 우리에게 자습을 시키고 제출된 독후감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반에서는 3개의 독후감만이 선정된다. 3개 안에 들어야 비로소 모든 2학년들과 겨룰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선생님이 지금 내 독후감을 읽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교과서는 못 보고 눈이 선생님의 표정을 따라다니느라 바빴다.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너무 감동하면 안 되는데.
나의 시선을 느낀 선생님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묘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왜, 잘 쓴 거 같아?”
“아,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결국 나는 3명 안에 뽑히지 못했다. 그리고 1년 내내 선생님이 내 독후감을 뽑아주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
함을 가지고 살았다.
나는 그런 존재였다. 반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아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아이. 아무 특징도 없고 무색무취인 그런 아이. 그리고 그맘때쯤 엄마에게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정도의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집으로 자주 전화가 걸려 왔다. 안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전화를 받는 엄마의 행동은 늘 부자연스러웠고 나는 닫힌 문을 노려보면서 거실 전화기를 들어 이야기를 엿들을까 수없이 고민했지만, 전화 내용을 들었을 때 의심이 진실이 되는 게 두려웠고 혹여나 감당하지 못할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될까 무서워 끝까지 수화기를 들지 못했다. 집으로 전화를 걸어 엄마와 통화를 하는 정체 모를 남자 때문에 나는 몹시 괴로워졌고 학교에서는 점점 더 말 없고 투명한 아이로 변해갔다.
늦게 들어오는 일이 별로 없는 엄마가 친구들과 저녁 먹고 들어간다고 전화를 하는 날이면 그 남자와 만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화가 끓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이제 곧 들어간다고 저녁 9시쯤 다시 전화가 오면 “언제 올 거냐고!”하고 소리를 꽥 지르고 전화를 일방적으로 뚝 끊어버렸다. 엄마가 현관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도 내다보지 않았고, 이불을 뒤집어쓰니 눈물이 떨어졌다.
그 무렵 엄마는 이모가 하는 반찬가게에서 오전에만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화장실로 들어가 씻고 나왔는데 엄마가 씻고 나간 화장실에선 항상 희미한 담배 냄새가 났다.
“엄마 화장실에서 무슨 냄새 안 나?”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면 “무슨 냄새?”하고 너무 당당하게 냄새의 의혹을 부정해서, 나는 내가 예민한 건가 생각했다. 그렇게 물증은 없이 심증만 가지고 의심을 하다 어느 날 화장실 벽에 걸린 수납장 맨 위 칸, 손이 잘 안 닿는 구석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발견한 날은, 집으로 날아온 어느 캐피털 회사의 최종 독촉장을 봤을 때보다 더 숨이 막혔다. 엄마가 바람도 피우더니 이제 담배까지 피우는구나.
가족 모두 거실에 모여 9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아빠는 항상 거실에 누워 베개를 하나 놓고 그 위에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옆으로 누워 TV를 봤다. 아빠가 눕는 자리 쪽의 벽지는 누렇게 변색돼 들떠 있었는데 텔레비전을 보면서 계속 담배를 피기 때문이었다. 고생해서 딴 자격증을 내세워 본인 사업을 시작했는데, 고민이 많은지 아빠는 하루에 담배 두 갑은 거뜬히 피웠다.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빨고 연기를 후우 내뱉었다.
“으이그, 진짜 그 담배 연기 때문에 못 살겠네. 담배
좀 안 피우면 안 돼?”
엄마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럼 같이 펴.”
아빠가 받아치니 엄마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자기도 담배 피우는 주제에 아빠한테만 뭐라 하는 건 뭐야.’
엄마가 집에 있을 때 전화가 걸려 오는 날엔 내가 엄마보다 빨리 받기 위해 전화기를 향해 달리기를 했다. ‘엄마가 받을게’하는 소리가 끝나기 전에 이미 수화를 들고 ‘여보세요’라고 말하면 전화는 뚝 하고 끊겼다.
“왜?”
“끊어졌어.”
“응...... 근데 유영아, 슈퍼 가서 카스텔라 좀 사 와. 경단 만들게.”
“지금?”
“응, 지금.”
어처구니가 없었다. 수가 뻔히 보였다. 나를 바깥으로 내보내고 통화를 하려고 하다니. 나는 무거운 엉덩이를 힘겹게 들었다.
“빨리 갔다 와, 빨리.”
나는 현관문을 쾅 닫고 1층까지 내려왔다가, 방향을 틀어 살금살금 까치발을 들고 내려온 계단을 다시 올랐다. 현관문에 귀를 바싹 붙이고 안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려고 애썼다. 분명 통화를 하고 있었다. 조곤조곤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 사이에, 호호호호 하고 웃는 예쁜 웃음소리가 자꾸 새어 나왔다. 나는 평소에 잘 들어보지도 못하는 웃음소리가. 주먹을 꽉 쥐었다. 주먹 속엔 주글주글해진 이천 원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이후로 엄마가 심부름만 시키면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결국은 갈 거면서 온갖 죽을상을 하고 겨우 일어섰다. “엄마 나 내보내고 뭐 하는데”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속으로만 말하고 속으로만 울었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살았더니 언젠가부터 엄마를 증오하고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전화벨이 딱 세 번 울리고 끊기니 엄마가 나를 불렀다.
“유영아, 약국 가서 아빠 파스랑 몸살약 좀 사 와. 앞에 성심약국 말고, 저기 더 밑에 있는 연세약국 알지? 거기서 사 와.”
“나 지금 뭐 하고 있어. 좀 있다 갈게.”
“지금 가, 지금 갔다 와.”
“좀 이따 간다고오오오!”
“아니 저건 누굴 닮아 저렇게 말을 안 들어. 저 성질머리 하고는. 엄마 한 번을 도와주질 않아. 외삼촌네 연정 언니 봐라, 외숙모 일 다니느라 힘들다고 맨날 설거지도 다 해놓고 빨래도 다 하고, 얼마나 착한지 모르는데 너는 엄마 도와주는 게 뭐 있어? 심부름 한 번 다녀오라는데 그거 한 번 예쁘게 못 가서 저 지랄을 하고. 지 아빠 닮아서 고집은 아주.”
‘지 아빠 닮아서 저런다’는 말이 너무 싫었다. 아빠가 밖에서 데리고 온 자식도 아닌데 왜 나는 아빠만 닮았다고 하는지.
집을 뛰쳐나와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엉엉 울었다. 내가 이런 상황에 삐뚤어지지도 않고 얼마나 착하게 지내는데 왜 이따위 욕을 먹어야 하는지 서러웠다.
같은 날, 밤늦게까지 편지를 썼다. 이 괴로운 사실을 혼자서 감당하려니 몸이 시름시름 아파 왔고, 못된 짓은 본인이 하면서 내게 말로 상처 주는 엄마에게 실은 내가 모두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고 싶었다.
A4용지 이면지를 책상에 올려놓고 비장한 마음으로 펜을 꾹꾹 눌러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눈물이 종이 위로 툭툭 떨어졌다. 눈물을 맞은 글씨가 동그란 원을 그리며 번졌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이 또 너무 잘 쓴 거 같아 감정 이입이 마구 되고, 마치 내가 비극 소설의 여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나는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고 있다는 협박성의 긴 편지였다. 무려 6장에 걸쳐 쓴.
다음 날 아침 현관에서 구두를 신으며, 옆에 서서 학교 잘 갔다 오라고 마중하는 엄마에게 A4 뭉치를 툭 던졌다.
“편지야, 나중에 읽어봐.”
그날 학교에선 아무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집에 가서 엄마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하나 엄마가 얘기 좀 하자고 하면 어떡해야 하나 그 생각만 가득했다. 미안하다고 할지 아니면 잡아떼며 크게 화를 낼지, 둘이 마주 보고 있는 장면만 상상해도 아침에 먹은 게 그대로 얹혀 있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학교로 찾아오는 건 아니겠지......’
하굣길에 딴 데로 새 버릴까 했는데 갈 데가 없어 꾸역꾸역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날 엄마는 편지에 관해선 단 한마디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어떠한 설명도 없었다. 삼 일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내가 편지를 준 게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내 상상이었나 생각될 정도로. 그러나 그 이후, 세 번 울리고 끊기는 전화는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엄마가 안방에 숨어 통화하는 모습 역시 보지 못했다. 끝까지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것에 역시 엄마답다 생각했다. 한편으로 깔끔하게 정리해준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역시 나도 그녀의 딸이라 끝까지 고맙다는 말은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아빠 딸만이 아니라 엄마 딸도 맞는 것이다. 강한 자존심을 똑 닮았네.
그 후로 나는 학교에서 조금씩 웃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