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라는 교내 풍습이 있었다. 교과서를 가까스로 한 권 다 떼었다는 의미로(한 학기가 끝난다는 것과 같은 의미) 반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먹을 것을 대접하는 이벤트다. 주로 떡이나 귤 같은 것을 돌렸다.
나는 책거리를 할 때쯤이면 엄마가 학교에 얼굴에 내밀까 봐 항상 긴장을 하고 있었다. 내게 말도 않고(당일 아침까지도) 떡이랑 귤을 바리바리이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다.
주로 책거리는 반에서 1, 2등 하는 아이의 엄마나 학교 육성회 소속 엄마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한다. 나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는데, 본인이 육성회라도 들면 내가 더 잘하지 않을까 학교를 열심히 쫓아다니는 엄마가 미웠다. 부끄러워서 엄마가 온 걸 보고도 모른 척도 많이 했다.
“야~ 너네 엄마 왔더라.” 모른 척하면 꼭 친구가 알려준다.
“근데 유영이네 엄마는 왜 온 거야?”
이 소리를 들을까 봐 두려웠다.
중학교 3학년, 내가 좋아했던 친구는 두 명이었다. 친구가 전부인 시절이었다. 엄마 아빠의 잔소리도, 선생님의 꾸중도, 학교 매점에 어떤 맛있는 빵이 새로 들어왔는지도 하나도 안 중요했다. 친구가 나를 얼마큼 좋아하는지, 그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제일 중요한 문제였다.
해인이는 쇼트커트가 잘 어울리고, 단 것을 좋아하고, 글씨를 잘 쓰는 아이였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 선물을 받는 게 특기여서 비싼 브랜드의 청바지 같은 건 돈 주고 살 필요가 없었다. 경품으로 간단히 받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를 특히 잘했고, 다른 과목도 다 잘했는데 대학에 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전문 기술을 배워 빨리 취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주원이는 피부가 하얗고 다리 모양이 아주 예뻤다. 주원이네 엄마는 우리 외삼촌이 사는 동네에서 화장품 가게를 했는데 볼 때마다 너무 미인이라 좋은 화장품을 많이 발라 그런 거라고 혼자 믿고 있었다. 주원이의 허벅지에는 화상 흉터가 있었다. 방바닥이 펄펄 끓는 줄 모르고 계속 낮잠 자다가 데었다고 했다. 주원이는 욕심도 많고 샘도 많았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치면 내가 몇 점을 받았는지가 본인 점수보다 더 궁금한 듯했다.
우리 셋은 어딜 가든 항상 손을 잡고 다녔고, 수도 없이 많은 편지를 써서 서로의 교과서에 몰래 끼워두었고, 요즘 유행하는 패션이 뭔지 어떤 선생님이 누굴 편애하는지 영어 16과 본문은 어디까지 외웠는지 이야기하다 보면 금방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주원이의 건조한 손을 잡았을 때 느껴지는 까슬한 감촉이나, 해인이가 발랐던 존슨즈 베이비 로션의 향 같은 것을 또렷이 기억할 수 있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도 해인이는 곧잘 우리 집 근처까지 놀러 왔는데 우리는 딱히 할 일 없이 동네 골목을 누비거나 개울 앞 너른 들판을 걸어 다니며 시간을 때웠다. 그날도 어김없이 각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골라 좁은 길을 따라 앞뒤로 나란히 걸으며 먹었다. 해인이는 아이스크림의 포장지를 벗겨 아무렇지 않게 길가에 휙 던져버렸다. 그게 왠지 멋있어 보여서 나도 손에 잘 들고 있던 포장지를 휙 하고 날렸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자신이 있었고 그렇지만 늘 해인이 보다 뒤지는 게 나였다.
“주원이가 그러는 데 말이야.”
“응?”
“유영이 너네 엄마가 말이야. 학(생)주(임)한테 돈 줬데.”
“...... 그게 뭔 말이야.”
“주원이네 엄마가 봤데. 그래서 주원이가 말이야, 네가 선도부 된 거, 학주한테 돈 줘서 된 거라고 나한테 그랬어.”
“우리 엄마가 왜 돈을 줘.”
의심을 받아 억울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주원이가 내 뒤에서 나쁜 말을 하고 다닌다는 것에 대한 배신감이 커서 그날 밤 잠을 설쳤다. 엄마가 중간고사가 끝나는 마지막 날이면 주원이까지 불러내 피자헛에서 피자도 사주고 선물도 사줬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내가 선도부가 된 것을 질투하더니, 결국 이런 일을 꾸미고 다녔구나 실망감에 휩싸였다.
‘내가 널 얼마나 좋아했는데...... 나한테 어떻게 그래.’
나는 조금씩 그녀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학교생활은 다시 재미가 없어졌고, 허전하고 우울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조례가 끝나고 담임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끔찍한 하루가 시작됐다.
“유영이 잠깐 교무실로 내려와.”
우리 담임 선생님은 독실하달까, 아니 성실해 보이는 기독교 신자였다. 내가 다닌 사립 중학교는 기독교 학교라 선생님들이 대부분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매주 한 번씩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며 찬송가를 불렀고, 목사님이 직접 교실을 다니며 성경 수업을 진행했다.
내가 처음 이 중학교에 배정받았다는 소식을 전하며 성경책과 찬송가를 준비해 달라고 적힌 안내문을 엄마에게 건넸을 때 엄마는 인상을 찌푸리며 노골적으로
싫을 티를 냈었다.
“왜 하필 교회 학교냐......”
왜 싫으냐고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는 어디서 종이 마감을 금색으로 발라놓은 엄청 고급지고 비싸 보이는 성경책을 사 가지고 들어왔다.
담임 선생님의 사회 수업은 재미없는 수업 중에서도 거의 상위권에 들 정도로 머리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우리에게 낸 퀴즈 하나는 또렷이 머리에 남아있었다.
“얘들아,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무엇일까?”
아무도 대답을 못 내놓자 “당연히 성경책이겠죠.”라고 스스로 답을 말했다.
‘호오, 정말.’
나는 순간 크게 동의하며 눈썹을 크게 치켜들었다 놓았는데, 그때 담임 선생님의 ‘믿음’이 사랑스럽게 느껴졌었다.
아침부터 내 이름이 거론된 날, 선생님의 부름을 받아 나는 교무실로 내려갔다. 여자 중학교라, 총각 선생님의 책상과 결혼한 남자 선생님의 책상은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우리 담임은 결혼해서 그런지 그 흔한 음료수도 하나 없고 책상 위가 헹했다. 선생님 자리까지 똑바로 걸어가 그 앞에 서자 선생님은 오른쪽 책상 서랍을 열어 무언가를 쓱 꺼냈다.
“이거 엄마 다시 가져다 드려.”
“네? 이게 뭔가요?”
나는 상황 파악이 안 됐다. 하얀 봉투를 건네받은 채로 잠시 그대로 서 있자 엄마에게 다시 돌려줄 게 무엇인지 이 봉투에 들은 게 무엇일지 서서히 감이 오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
흰 봉투를 쥐고서 그대로 화장실로 뛰었다. 화장실 문을 꼭 걸어 잠갔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봉투 안에는 만 원짜리가 열 장 들어있었다.
그날 학교 수업이 모두 끝날 때까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모든 선생님과 모든 학생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 같았고, 모두 속으로 나를 비난할 거라 생각하니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주원이가 뒤에서 하고 다녔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쏟아졌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책가방도 못 벗고 엄마 앞에 서서 돈 봉투를 집어던졌다.
“이게 뭐야?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미쳤어?”
“아니 이게 뭔데 난리야?”
“나 학교 어떻게 다니라고 이래, 나한테 왜 이래!”
봉투를 확인한 엄마가 엄청나게 놀랄 줄 알았더니 금방 침착해져서는 말했다.
“너네 선생님은 왜 이걸 너한테 주고 그러니.”
“아니 그게 지금 할 소리야?”
“너네 담임 이번에 아들 낳아서, 뭐 해드리면 좋을까 육성회 엄마들이랑 의논했더니 그래도 돈이 제일 낫지 않겠냐 그러더라. 교장 선생님도 그게 좋지 않겠냐 했고오.”
“학교 오지 마 오지 마, 제발 오지 좀 마!”
나는 소리를 지르고 통곡을 하면서 집을 나왔다. 학주한테도 돈 줬냐고, 그래서 나 성적도 안 되는데 선도부 된 거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할까 봐 무서워서.
겨울 방학이 시작될 무렵, 엄마는 곧 시작할 신년에도 잘살아 볼까 마음을 먹었는지 어디서 새 수첩을 사 왔다. 새 수첩의 앞을 보고 뒤를 보고 중간쯤도 열어보고 애지중지하는 모습이 귀여울 정도였다. 그리고 맨 마지막 장을 열어 본인의 이름과 주소를 넣는 란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순간 엄마가 멈칫하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었으나 일부러 쳐다보지 않고 있었다. 엄마는 내 쪽을 보고 있었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계속 시선을 피했다. 몇 번을 더 망설이더니 내 코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 메모장이랑 펜을 내 쪽으로 쓱 밀면서.
“유영아.”
“응, 뭐?”
“엄마 이름 좀 영어로 여기 써봐.”
“뭘 쓰라고?”
“엄마 이르으음. 엄마 이름 영어로 어떻게 쓰나 여기다 적어봐.”
힐긋 보니 새로 산 수첩 마지막 장엔 모든 칸이 빼곡히 한글로 채워져 있었는데 단 한 곳만 비어 있었다. 한글 이름 밑에 영어 이름을 적는 칸이.
순간 마음이 징 하고 멍들 것 같았다. 엄마가 영어를 모른다고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본인의 이름을 영어로 쓸 수 없을 거라고 상상조차 못 했다. 알파벳도 모르면서 내 영어 점수가 조금만 떨어지기라도 하면 잡아먹을 듯 내게 으르렁거렸던 건가.
내가 아는 엄마는 자존심도 강하고 지기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내게 그걸 물어보기까지 적어도 열두 번은 고민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