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시간마다 자동 분사되는 방향제가 어딘가 붙어 있어서, 어쩌면 이렇게 끔찍하게 조용한 곳이 있을까 이곳은 대체 어디일까 생각이 들 때마다 갑자기 슉- 하고 치고 들어오는 소리에 천천히 이성이 돌아왔다. 그리고 느껴지는 특유의 향기.
‘아, 여기 독서실이지.’
방향제 향에 취한 건지 잠에 취한 건지 나는 늘 몽롱한 상태였고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면 아직도 새벽 1시, 내 책상 위에 올려진 수학 문제집은 한 시간 전부터 아니 두 시간 전부터 계속 같은 페이지. 나는 새벽 두 시까지 여기서 나갈 수 없다. 집까지 데려다주는 봉고차는 정확히 두 시 출발이다.
그 방향제가 어느 회사의 무슨 제품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꽤나 유명한 제품인지 나는 가끔 그 향을 다른 곳에서도 맡을 수가 있었다. 뿜어 나오는 타이밍도 똑같고, 소리도 똑같고, 향도 똑같다. 그럼 나는 독서실을, 대학에 가 보겠다고 (못하는) 공부를 하던, 괴롭고 쓸쓸했던 그 장소를 어쩔 수 없이 떠올리고 말았다.
독서실은 슬펐다. 조용한 것도 슬펐고, 어두운 것도 슬펐고, 사람이 없어도 슬펐고, 사람이 있어도 슬펐다. 억지로 억지로 공부를 하다가도 어떤 때는 한 번에 5시간씩 좋아하지도 않는 수학 문제를 풀었다. 시계를 보니 5시간이 그냥 지나있었다. 나는 엉덩이 한 번 안 띈 것 같은데.
한동안은 계속 잠만 잤다. 입실하자마자 엎드려 잠을 자다가, 독서실 주인이 와서 문 닫을 시간이라고 어깨를 툭툭 치면 그제야 일어났다. 한 달이 지나 독서실비를 주는 날이면 나는 왜 여기서 이렇게 돈을 버리고 있는가 한심해졌다. 그래도 독서실 안 가겠다는 소리는 한 번도 안 했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공부에 열정을 가지지도 흥미를 느끼지도 못했다. 그런데 너무 열심히 공부했다.
고3이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본인이 배우지 못한 한을 나를 통해 풀고 있는 것 같은 엄마의 등살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엄마는 나 죽었다 생각하고 1년만 참으라고, 대학만 가면 네가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살라고, 그렇게 나를 꼬셨다. 그래서 누굴 위한 공부인지 모를 그것을 열심히 했다.
아침 7시에 등교해서 아침 자율학습을 하고, 정규 수업을 마치고 나면 밤 11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했다.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봉고차가 날 태워 독서실에 내려놓으면 난 새벽 2시까지 독서실에 갇혀 있었다. 평균 4시간 정도밖에 잘 수 없었으므로 항상 졸렸고, 날짜가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으며, 공부를 하다 잠이 든 건지, 잠을 자다가 공부를 한 건지 헷갈렸다. 어느 쪽이든 크게 달라지진 않지만. 어느 쪽이든 성적이 쑥쑥 오르는 기적 또한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때의 가장 아픈 기억은 그런 거였다. 새벽 두 시에 (하나 같이 모두 눈이 흐릿한) 아이들이 두어 명쯤 앉아있는 봉고차를 타고 독서실 주인이 날 내려놓으면 엄마가 집 앞 저만치에 서 있는 게 보였다. 어떤 날은 좀 더 먼 곳까지, 갈빗집 앞 혹은 슈퍼 앞까지도 마중 나와 있었다. 하얀 입김을 호호 뿜으며 추운 겨울 새벽 공기에 폭 싸여 있는 엄마가 너무 싫었다. 이게 서로에게 무슨 끔찍한 피해인가 싶었다.
‘엄마가 그런다고 해서 내가 더 공부를 더 잘하게 되지 않는다고...... 그냥 자지 왜 나와......’
마음이 차가워지는 밤들.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모두에게 주어진 똑같은 밤이 아닌 다른 밤에, 나와 엄마만 둘이 남겨져 있는 것 같았다.
수능을 며칠 앞두고 엄마와 시장에 갔다. 추운 날에도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노상을 깔고 이것저것 팔고 있었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한 할머니 앞으로 끌고 갔다. 할머니는 땅콩을 잔뜩 묻힌 투명한 갈색의 엿을 팔고 있었는데, 두께는 얇고 직사각형에 A4용지 만한 크기였다.
엄마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유영이 엿 먹고 대학교 철썩 붙으라고.”
“아 싫어 뭐 이런 걸 사, 먹지도 않는데.”
유명하다는 점쟁이에게 돈을 많이 주고받아온 합격기원 부적이 집에 붙어있는 그런 날들이었다. 엿이 담긴 검은 봉지는 결국 내 손에 들렸다가 냉동실 안으로 들어갔다.
고3 생일에는 그런 편지를 써줬었다.
‘엄마가 미신을 너무 좋아해서 미역국도 못 끓여주고 미안하다.’
그때는 어쩐지 분하고 속상해서 읽고 나서 책상 서랍을 열어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엄마에게 받아 본 첫 편지, 그것도 쓰다가 나한테 들켜버린 그런 편지.